시외버스 책읽기 2


 책을 읽으면서 버스내음이나 버스소리를 잊으려고 하지만, 속이 울렁거리면서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서울에 닿기 앞서부터 바람결이 칙칙하다고 느낍니다. 이곳 서울에서 이 많은 사람들은 무얼 보고 마시고 쓰고 먹으면서 목숨을 이을까요. 이곳에서 살아왔고 이곳에서 살아가며 이곳에서 살 사람들한테는 무슨 빛줄기가 도움이 되거나 쓸모가 있을까요. 아니, 빛줄기를 바라기는 할까 모르겠습니다. 빛줄기를 찾기나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내가 시외버스를 타서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책읽기이고 다른 하나는 잠자기입니다. 그러나, 시외버스에서 잠을 자며 몸이 개운한 적이란 없습니다. 시외버스에서 책을 읽으며 머리가 맑아지는 때란 없습니다. 푸른 들판에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곳이 아니라면 잠을 자더라도 개운하지 않습니다. 푸른 들판 내음과 소리를 맞아들이고 파란 하늘 내음과 소리를 받아들이는 자리가 아니라면 책을 읽더라도 맑거나 밝은 넋이 깃들지 않습니다.

 책을 살짝 내려놓습니다. 한손으로 이마를 짚습니다. 조용히 비손합니다. 부디 나부터, 아무쪼록 내가 먼저, 메마르거나 팍팍하거나 쓸쓸한 곳을 오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내 빛줄기를 놓거나 잃거나 내동댕이치지 말자고 비손합니다. 내가 걷는 길에 내 발자국 고이 아로새기고, 내가 쥔 책에 내 손길 예쁘게 어리도록 하자고 비손합니다. 아나스타시아는 나를 돕고, 나는 아나스타시아를 돕습니다. 옆지기가 나를 돌보고, 나는 옆지기를 돌봅니다. (4344.9.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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