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는 손이 커요
둘째 백날을 맞이해서 선물을 받았습니다. 둘째한테 고맙게 선물해 주신 분은 딸아이를 어여삐 보살피며 함께 살아가는 분입니다. 이른바 ‘아줌마’라 할 분입니다. 옆지기는 선물꾸러미를 보면서 “아줌마는 손이 커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리한테 아이 옷을 물려주시는 다른 아주머니들 누구나 ‘상자 하나 가득 꾹꾹 눌러 담아’ 옷을 보내시거든요. 참말 알뜰하게 입히고 알뜰하게 건사해서 알뜰하게 물려줍니다. 곰곰이 따지면, 나는 아저씨이고 옆지기는 아줌마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입은 옷은 다른 이웃한테 물려줄 만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두 돌 즈음까지 입는 옷은 첫째가 워낙 개구지게 놀았기 때문이라 할 테지만, 꽤나 낡거나 헐었거든요. 아무래도 여러 아이가 돌려입으면서 우리 첫째한테까지 왔으니 우리 첫째가 마지막으로 누리는 옷이라 할 수 있고, 우리 둘째는 이 낡거나 헌 옷을 그대로 더 물려입어도 괜찮다 할 만해요. 여기에서 더 물려주기는 힘들고, 아이들이 크면 고스란히 갈무리했다가 이 아이들이 나중에 고운 짝을 만나 저희 아이를 낳을 때에 물려주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집식구 모두 잠든 새벽녘 부시시 일어납니다. 잠든 집식구들 이마를 쓸어넘기면서 헤아립니다. 옆지기는 “아줌마는 손이 커요.” 하고 말하지만, 바로 당신도 아줌마이고, 누구 못지않게 당신이 둘레에 선물할 때에도 손이 큽니다. 옆지기가 무얼 선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어 놀라지는 않습니다. 이야, 선물을 할 때에는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놀랍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언제나 선물을 많이 받거나 누렸을 테지만, 이 선물이 얼마나 커다란 선물인가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고 깨닫습니다. 물건이든 돈이든 마음이든, 선물하는 사람들 삶을 옳게 살피지 못했습니다. 내가 받을 만한 선물인가 아닌가를 곱씹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고마이 받은 선물을 알뜰히 누리면서 내 삶을 한결 알차게 북돋우는 길을 찾는 데에서도 아직 좀 헤맵니다.
선물이 내 품에까지 와서 안기든, 또는 선물하는 마음만 받고 물건은 돌려주든, 무엇보다 마음을 살가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마음을 받을 수 있는 몸가짐이 되면서, 나 또한 내 둘레 고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 예쁘게 선물하는 넋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날마다 숱한 곡식이랑 푸성귀한테서 예쁜 목숨을 선물받아 내 목숨을 잇습니다. 내 목숨을 이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으로 내 둘레에 무언가를 선물하는 삶을 일구자고 다짐합니다. 다짐이라 말하지만 다짐이라기보다 그저 삶입니다. 좋은 넋으로 좋은 삶을 일구고, 좋은 삶으로 좋은 선물을 나눕니다. 좋은 선물을 나누면서 좋은 글 하나를 즐기고, 좋은 글 하나로 좋은 책 하나를 마련합니다. (4344.9.2.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