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책읽기


 아이하고 텃밭 옆에 함께 앉는다. 문득 이 텃밭에서 아이하고 풀을 뽑은 적은 있고, 아이하고 씨를 심은 적은 있으나, 텃밭 옆에 함께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가만히 푸성귀나 풀을 바라본 적은 없다고 느낀다. 오늘 옆지기는 첫째랑 멧길을 올라가서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단다. 그렇구나.

 텃밭 옆에 앉으니 모기에 물린다. 아버지만 잔뜩 물린다. 모기가 아이를 물지 않아 고맙지만, 땀내 물씬 풍기는 아버지 등짝이며 어깨며 발등이며 무릎이며 된통 무는 모기가 고달프다.

 아버지는 텃밭 옆에서 고추꽃이랑 오이꽃을 그림으로 그린다. 아이는 텃밭 옆에서 꼬물꼬물 글 그리기를 한다. 멧골자락 작은 집에서 멧길을 오르내리는 일도 좋은 한편, 가만히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일도 좋은데, 왜 이제껏 이렇게 하자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너무 고단해서? 너무 힘들어서? 너무 지쳐서? 사람들은 마음을 쉰다며 멧자락을 타기도 하는데, 멧골자락 집에서 살아가며 멧골 기운을 더 깊이 느끼지 않으니 바보스럽다 할 만하다.

 식구들 모두 새근새근 잠든 깊은 밤, 우리 집을 둘러싼 풀숲에서 끝없이 가득가득 퍼지는 풀벌레 소리를 마음껏 듣는다. 둘째 백날떡을 받으러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도 풀벌레 소리를 신나게 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걸어도, 자전거를 달려도, 아이를 안고 달래도, 부엌에서 쌀을 씻어 불려도, 노상 듣는 풀벌레 소리.

 둘째 백날을 맞이해 찾아온 음성 할머니가 텃밭에 배추를 심어 김장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신다. 배추랑 무를 심고픈 마음 한가득이지만, 이제 이 멧골집에서 떠날 텐데, 그래도 텃밭에 씨앗을 심고 떠나야 할까. 나는 아직 모르겠다. 올봄에 텃밭 가장자리에 심은 살구나무 잎사귀가 천천히 노랗게 물든다. (4344.8.2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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