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소리와 책읽기


 하루 내내 귀뚜라미 소리를 듣습니다. 아니, 귀뚜라미 소리만 듣지 않습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풀벌레가 많지 않아 제대로 모른다뿐, 하루 내내 수많은 풀벌레가 자아내는 수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풀벌레는 사람 들으라고 노래를 할 수 있겠지만, 굳이 사람 들으라며 노래를 하지 않는달 수 있습니다. 듣기 나름일 테지요.

 잠자리에 든 뒤에도 풀벌레 소리는 내 온몸을 감쌉니다. 쌀을 씻어 불릴 때이든, 국을 끓일 때이든, 걸레를 들어 방바닥을 훔칠 때이든, 빗자루를 들어 방바닥을 쓸 때이든, 언제나 풀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봄과 여름에는 풀벌레 소리보다 멧새 지저귀는 소리를 훨씬 자주 더 길게 들었습니다. 아직 늦여름이라 할는지 모르나 살갗으로는 이른가을이라 느낍니다. 아무튼, 봄과 여름 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벽과 밤에도, 노상 멧새 소리가 내 온몸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골목동네 한복판에 깃들던 인천땅 보금자리에서는 깊은 새벽에도 째지는 듯한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설핏 잠을 깨야 했습니다. 깊은 골목동네 한복판에서도 깊은 밤 고요함을 깨뜨리는 술 얹힌 사람들 흐느끼거나 지껄이는 목소리에 자꾸 잠을 깨야 했습니다. 멧새이든 풀벌레이든 울음소리를 그치지 않습니다. 개구리이든 매미이든 신나게 울어댑니다. 그런데, 멧새와 풀벌레와 개구리와 매미가 이루는 소리마디는 내 잠을 깨우지 않습니다. 잠이 깊이 들도록 이끕니다. 잠이 달콤하도록 돕습니다.

 시골 하늘을 흐르는 바람은 내 숨결을 보살핍니다. 시골 흙바닥을 흐르는 물은 내 뼈마디를 돌봅니다. 시골 터전을 채우는 소리는 내 넋과 얼을 어루만집니다.

 첫째 아이가 고단한데다 졸린 몸으로 끝없이 놀고 뛰며 노래하다가는 이내 두툼한 책 하나를 배에 깔고 스르르 잠들었습니다. 아이 머리카락부터 발톱까지 풀벌레 소리 고즈넉히 스며듭니다. 좋은 한낮입니다. (4344.8.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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