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책읽기


 텃밭에 호박씨를 심은 적이 없다. 그렇지만 호박싹이 텄고 호박줄기가 올랐으며 호박잎이 돋다가는 그예 호박꽃이 핀다. 내가 한 일이라면, 둘째가 태어난 뒤로 텃밭을 도무지 들여다보지 못하면서, 밥을 할 때에 호박 찌끄레기를 텃밭 한쪽에 버린 한 가지. 호박 찌끄레기에 깃들던 호박씨 몇이 텃밭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터서 노란 꽃방울을 함지박만 하게 터뜨렸다.

 아이하고 살아가며 똑같은 그림책을 수백 차례 되풀이 읽는다. 한 번 보고 그닥 다시 보고프지 않은 그림책을 사고 난 뒤에는 돈을 잘못 썼다고 생각한다. 지식이나 상식을 다룬다든지, 옛사람 살림살이나 장마당을 보여준다든지, 지구별 여러 나라 모습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그림책을 아이들이 수백 차례 보기는 힘들다. 수백 차례 되풀이해서 볼 만한 그림책에는 이야기가 깃들어야 한다. 날마다 먹는 밥처럼 날마다 여러 차례 되읽을 만큼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여야 한다.

 둘째가 혼자 잘 놀기도 한다. 그렇지만 곁에서 말끄러미 바라보며 함께 놀자고 해야 훨씬 잘 논다. 조막만 한 손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고 두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힘을 쓰게 하기만 해도 까르르 웃는다. 두 발을 하나씩 쥐고 하늘달리기를 해 주어도 즐겁게 웃는다.

 어버이로 살아가며 하루하루 기쁘게 맞아들이도록 돕는 책을 한 권 두 권 아끼면서 그러모으지 않는다면, 아이하고 책읽기를 할 수 없다. 어버이로 지내면서 어버이다운 삶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책을 한 권 두 권 살피며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이한테 책을 물려줄 수 없다. 호박꽃은 흙땅에 씨를 뿌리내리면 피어나지만, 씨앗이 있어야 하고 흙땅이 있어야 한다. 빗물이 있어야 하고, 햇살이 있어야 하며, 바람이 있어야 한다. (4344.8.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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