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안 받는 사람


 아이하고 마실을 다니면서 곧잘 책을 선물한다. 여느 때에 책을 즐겨읽는 이라면, 내가 선물하는 책을 몹시 고맙게 여긴다. 따지고 보면 책 하나는 만 원이 안 되거나 만 원을 살짝 넘는다. 요즈음 물건값이나 돈값으로 친다면 책 선물이란 참 하잘것없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며 즐겨읽는 사람한테는 ‘그닥 안 좋아하는 갈래’인 책이 아니고서는 몹시 반가이 맞아들인다.

 여느 때에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책을 선물할 때에 얼마나 시큰둥하면서 떨떠름한데다가 ‘뭥미?’라 하는 낯빛인지 모른다. 마치 못 볼 것을 보았다거나 만지지 말아야 하는 쥐똥이나 개똥이나 닭똥을 건드리기라도 했다는 듯한 손짓이다. 여느 때에 책을 읽지 않으니 책을 손가락으로 잡는 모양새부터 얼마나 싫어하는가를 아주 잘 느끼도록 한다.

 선물하는 책을 받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한테 책을 선물하는 일이라든지 동무나 이웃이나 살붙이한테 책을 선물하는 일 또한 없거나 드물리라 본다.

 책은 지식도 학력도 자랑도 훈장도 뭣도 아니다. 책은 오직 내 마음밭을 살찌우는 좋은 거름이다. 책은 밑거름이다. 책은 웃거름이 아니다. 책은 화학비료나 풀약이 아니다. 책은 트랙터나 경운기가 아니다. 책은 오직 마음밭 살찌우는 잘 삭은 밑거름이다.

 책을 읽으려면 스스로 밑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 책을 읽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책을 읽으려면 나 스스로 바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책을 읽으려면 내 삶을 날마다 조금씩 바꾸어야 한다. 책을 읽으려면 더 따스히 사랑하고 더 넓게 믿어야 한다. 책을 읽으려면 한손에 걸레나 부엌칼을 쥐어야 한다.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살림을 하려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랑하는 삶이 아니요, 꿈을 꾸는 넋이 아닐 때에는 책을 읽지 못하고, 애써 책 몇 가지를 읽었더라도 옳게 삭이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마음으로 밭을 일구지 않고 몸으로도 텃밭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한테 책을 선물하는 일이 잘못이 아닌가 싶다. 아니, 틀림없이 잘못이리라. 밭갈이하는 땀방울을 아끼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으면서 쉽게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 멍청이요 얼간이라 할 만하다. (4344.8.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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