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등록금 책읽기


 대학 등록금이 워낙 비싼 나머지, 집에서 대는 돈으로는 아무래도 벅차니까 따로 일자리를 찾아서 푼돈이라도 버는 대학생이 많다고들 한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뿐 아니라 지난날에도 대학 등록금을 벌려고 애쓴 대학생은 많았다. 예나 이제나 비싸다는 대학 등록금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대학생도 많다. 누군가한테는 벅찬 짐일 테지만, 누군가한테는 아무것 아닌 돈이다. 그런데 대학 등록금만 비쌀까. 도시에서 살아가며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넣거나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나 학습지를 받는 돈은 안 비쌀까. 아이들은 대학교 문턱에 들어서기 앞서인 예닐곱 살이든 초등학생 때이든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때이든, 벌써부터 해마다 천만 원씩 배움값을 내지 않느냐 싶다. 학원과 학습지에 들이는 돈은 진작부터 대단히 크다고 느낀다.

 아이가 태어나서 널리 사랑받거나 두루 믿음받는다고는 느끼지 못한다. 이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보육시설에 맡겨지면서 영어를 배우고 뭐를 배우며 또 뭔가를 배운다. 고운 목숨을 선물받았다고 느낄 겨를이 없다.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 나이에 걸맞게 삶을 배우며 죽음을 깨달아 목숨을 아끼는 매무새를 착하고 참다이 건사해야 할 테지만,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교 앎조각에 목을 매단다. 초등학교부터 성적과 등수와 영어와 교과목과 학습지와 독후감과 글짓기로 옭아매는데, 요사이에는 여기에 한자까지 끼워넣을 판이다.

 옳게 따진다면, 대학 등록금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천만 원이다. 지난날에 백만 원 돈이었다 한다면, 지난날 백만 원은 오늘날 천만 원하고 같은 값어치이다. 조금도 값싸지 않던 지난날 등록금이고, 조금도 더 비싸지 않은 오늘날 등록금이다. 지난날에는 이 비싼 배움값을 대면서까지 구태여 대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내 삶길을 열거나 내 일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이제는 보육시설에 첫발을 내디딘 때부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찾거나 죽음을 깨닫는 일이 없다. 아이들은 예닐곱 살이 아닌 대여섯 살이나 서너 살부터 머리에 앎조각만 자꾸자꾸 집어넣는다. 스스로 삶을 일구지 못한다. 착한 삶도 참다운 말도 고운 몸가짐도 익히지 못한다. 그저 대학교에 가야 뭔가를 이루거나 거머쥐거나 누릴 수 있는 듯 여긴다.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고 느끼니 ‘반값 등록금’을 이루자고 하지만, 반값 등록금이래서 값싸지 않다. 오백만 원이면 괜찮은가? 아니다. 천만 원이 힘든 사람은 오백만 원도 힘들 뿐 아니라 백만 원도 빠듯하다. 대학교에서 배울 만한 이야기가 많다면 천만 원이 아닌 이천만 원이나 삼천만 원을 내고도 다녀야 맞다. 대학교를 다니며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꿈과 삶과 빛과 슬기를 느끼며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배움값을 놓고 따질 일이 없다.

 대학생이 되고자 여러 일을 해서 배움값을 버는 일은 나쁘지 않다. 다만, 대학생이 되지 않고 씩씩한 여느 일꾼이 되어 일을 해서 일삯을 벌어들인 다음, 이 일삯으로 젊은 넋을 북돋우는 곳에 기쁘며 예쁘게 쓸 수 있으면 훨씬 빛나면서 보람차리라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수험서는 입시교재일 뿐 책이 아니요, 대학교재 또한 그저 교재이지 책이 아니다. 책은 내 삶이다. 책은 내 땀이다. 책은 내 눈물과 웃음이다. (4344.7.19.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