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자전거는 바람을 가르며 달립니다. 앞에서 마주 부는 바람일 때에는 이 바람을 뚫습니다. 뒤에서 떠미는 바람일 때에는 이 바람을 업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 자전거를 달리면 그닥 시원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자전거를 달려야 비로소 시원합니다.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바람이 아주 세게 불지 않는다면 맞바람이든 등바람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땡볕을 거닐며 땀이 흐르고, 바람이 부는 날은 땡볕에서도 어느 만큼 견딜 만합니다.

 자동차도 때때로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건 안 불건 자동차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자동차는 에어컨을 틀면 되고, 창문을 열어도 됩니다. 바람이 부는 날에도 자동차는 에어컨을 틀면 그만일 뿐 아니라, 바람이 어떠한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바람이 불 때에 풀잎과 나뭇잎을 흔듭니다. 풀이 눕고 나뭇잎이 뒤집힙니다. 들판과 논에는 물결이 치고 하늘에는 구름이 흐릅니다. 그렇지만 풀과 나무를 도려낸 도시나 시골 읍내에서는 바람이 불 때에 쓰레기가 날리고 간판이 흔들립니다. 건물 사이사이 매섭게 때리는 된바람이 불 뿐입니다.

 바람이 부는 날, 바람소리에 잠겨 풀벌레나 개구리나 멧새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바람이 잠든 날, 온누리를 휘감는 풀벌레나 개구리나 멧새가 우는 소리로 시골집 둘레가 가득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무더운 여름 밤, 기저귀 빨래가 마르는지 안 마르는지 알 길이 없고, 네 살 아이는 이리 구르고 저리 뒤집으며 이불을 걷어찹니다. (4344.7.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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