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걷히면서 해가 난다. 언제 보고 이제서야 보는 해인가 헤아리면서 오늘 가장 먼저 할 일을 하나씩 어림한다. 무엇보다 빨래이다. 비가 그치지 않아서 할 수 없던 두꺼운 옷 빨래나 이불 빨래를 해야 한다. 이 좋은 햇볕을 듬뿍 쬐면서 숲에서 책 한 권 시원하게 읽을 수 있기를 바라지 못한다.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아이들이 햇볕을 쬐며 멧길을 오르내리도록 마실을 다니자고 생각할밖에 없다. 아이들 옷가지가 햇볕을 쬐며 따사로운 기운을 듬뿍 받아들이기를 바랄밖에 없다.

 제아무리 좋다 하는 빨래기계를 쓴들 햇볕처럼 보송보송 말리지 못한다. 제아무리 좋다 하는 아파트에 산다 한들 햇볕을 머금은 바람처럼 바짝바짝 말리지 못한다. 햇볕을 흉내내거나 바람을 시늉한대서 햇볕처럼 따사롭거나 바람처럼 시원하지 않다. 흙을 따라한대서 흙처럼 모든 씨앗을 넉넉히 품으면서 뿌리가 내리도록 하고 줄기를 올리도록 하지 못한다.

 해를 바라보는 풀처럼 해를 바라보는 빨래이고, 해를 바라보는 나무처럼 해를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해를 좋아하는 꽃처럼 해를 좋아하는 살결이요, 해를 사랑하는 흙처럼 해를 사랑하는 목숨이라고 느낀다.

 햇볕을 보니, 살아가는 하루를 새삼스레 깨닫는다. 햇볕을 쬐며, 살아숨쉬는 오늘을 다시금 고맙게 돌아본다. (4344.7.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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