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 책읽기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아픈 사람 몸과 마음을 하나도 모릅니다. 아픈 사람은 안 아픈 사람이 마음껏 뛸 때에 몸과 마음이 어떠한가를 조금도 모릅니다. 돈있는 사람은 돈없는 사람 고단한 삶을 터럭만큼도 모릅니다. 돈없는 사람은 돈있는 사람 넉넉한 삶을 모래알만큼도 모릅니다.

 그제 아침 둘째 오줌기저귀를 빨래하는데 왼손목이 찌릿하면서 조금도 힘을 줄 수 없습니다. 왼손목에 힘을 줄 수 없으니 비빔질이나 헹굼질뿐 아니라 바가지로 물을 뜰 수조차 없습니다. 밥을 할 때에 왼손으로 도마를 들어 씻는다든지, 왼손으로 그릇이나 접시를 들어 오른손에는 수세미를 들 때에 왼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칫 그릇이나 접시를 놓칠 뻔할 뿐 아니라 자꾸 아파서 아예 들지를 못합니다. 어찌저찌 다 한 빨래를 짤 수도 없고 털 수도 없습니다. 다 끓인 미역국을 그릇에 담아 들어 옮길 수도 없습니다. 이런 손으로 무얼 할 수 있나 모르겠습니다. 겉보기로는 멀쩡하다지만 속에서 망가졌는데,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픈 왼손목으로 책짐 싸기는 그대로 합니다. 비질을 하며 방을 씁니다. 기저귀 빨래도 그대로 하고, 밥도 고스란히 합니다. 첫째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읍내 마실을 다녀옵니다.

 이틀이 지난 아침, 왼손목이 찌릿찌릿하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그럭저럭 쓸 수는 있습니다. 아니, 안 쓰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안 쓴다면 우리 집일을 할 사람이 없고, 갓난쟁이 기저귀를 댈 수 없을 뿐 아니라, 첫째랑 옆지기한테 밥을 먹일 수 없습니다. 이 왼손목을 어찌저찌 쓰지 않는다면 우리 집안 밥벌이 노릇까지 하는 글쓰기나 사진찍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제와 어제 잠자리에 누워 왼손목을 오른손으로 살며시 쥐고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왼손목이 아프니 집일을 하는 데에 품이 더 들고, 품이 더 드니 더 고단해서 그야말로 하루 한 쪽 책읽기조차 아예 생각을 못합니다. 손목이 아프면 가벼운 책을 들 때에도 찌릿하면서 눈물이 찔끔 납니다. 무겁다 싶도록 만든 책은 이런 손목으로는 들어서 읽을 수 없기도 하지만, 들어서 나를 수 없기도 합니다. 가벼운 종이로 조그맣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면, 손목이 아픈 사람은 차마 건드리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읽도록 만드는 책이라는 어린이책은 으레 겉을 두껍게 합니다. 그림책은 겉종이가 꽤 두껍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거칠게 보니까 이렇게 만든다지만, 아이들은 처음부터 책을 거칠게 보지 않습니다. 제 어버이가 책을 보드라이 매만지면서 읽으면,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책을 보드라이 매만지면서 예쁘게 건사합니다. 아이들은 겉종이가 두꺼운 책을 들면서 무겁다고 느낍니다. 어른 가운데에도 손목이 아픈 사람은 겉종이가 두껍거나 무거운 책은 참으로 무겁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겉종이가 얇고 가벼워도 예쁘고 정갈히 건사할 줄 알 뿐 아니라, 어버이나 어른한테서 이렇게 책을 다루어야 하는 줄 배워야 합니다. 거칠게 다루고 많이 넘기니까 두껍게 겉종이를 댄다고 하지만, 가볍고 얇게 만든 책이라 하더라도 곱고 알뜰히 건사해서 오래오래 즐길 수 있도록 만들 뿐 아니라, 책을 어떻게 다루고 넘기며 즐겨야 하는가를 아이들 스스로 깨닫도록 마음밥부터 찬찬히 먹이는 어른으로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4.7.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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