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7.8.
: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바퀴
- 장날인 어제는 비가 그치지 않았다. 어제 읍내 마실을 할 생각이었으나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싶어 그만두었다. 날씨 소식을 들으면 오늘은 비가 그친다 했는데 아침부터 낮까지 비가 그칠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옆지기가 먹을 미역국에 넣을 무와 여러 가지를 장만해야 하기 때문에, 비를 맞으며 읍내에 다녀오기로 한다. 장마당이 아니더라도 읍내 가게에서 무나 여러 가지를 살 수는 있으니까.
- 비옷을 챙겨 입는다. 첫째 아이가 함께 가고 싶어 한다. 안됐지만 오늘은 아버지 혼자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한다. 저번에 두 번 비오는 날에 함께 다녀온 적이 있기도 하지만, 아버지는 자전거를 몰지만, 아이는 수레에 앉기만 하니까, 내내 비를 맞으면 몸이 나빠질까 걱정스럽다. 아이가 스스로 발판을 밟으며 자전거를 밀 수 있을 때에는 얼마든지 비를 함께 맞으며 자전거마실을 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 음성 읍내로 가는 길에는 빗소리 말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찻소리가 있다. 자동차가 드문드문 지나가기에 비를 이끄는 바람이 숲에 우거진 나무를 흔드는 소리가 있다. 논에서 개구리를 잡는 왜가리 날갯짓 소리와 괘왝괙 소리가 있다. 논과 밭과 숲과 멧등성이로 둘러싸인 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일은 더없이 고마우며 기쁘다. 멧자락에 걸린 구름을 바라보고, 담배꽃에 서린 뽀얀 물방울을 바라본다. 저 멀리에서 내 쪽을 바라본다면 나 또한 구름이 살짝 걸린 길을 달리는 자전거일 테지.
-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누구도 느끼지 못하리라. 자동차를 몰기 때문에 멧자락 소리를 느낄 수 없으리라. 자동차를 모는 어른하고 다니는 아이 또한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겠지. 비오는 날 멧등성이가 무엇을 이야기하면서 무엇을 곱게 품어 쓰다듬는지를 느낄 길이 없겠지.
- 아이는 태우지 않았어도 먹을거리를 장만할 때에 실으려고 붙인 수레를 끙끙 끌며 오르막을 오른다. 길바닥을 내려다보며 달리면 발판을 더 잘 밟을 수 있지만, 오늘 같은 하늘과 멧자락을 안 볼 수 없다. 고개를 들어 왼쪽 오른쪽 갈마들며 바라본다. 발은 자전거 발판을 밟으면서 길과 오르막을 느끼고, 눈은 비에 젖은 멧자락을 바라보며 싱그러운 풀내를 느끼자.
- 호젓한 멧등성이를 오르내리면서 문득 생각한다. 네 식구 시골자락으로 옮겨 지낸 지 한 해가 지나는 요즈음, 읍내로 자전거를 몰아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 그닥 힘들지 않다. 처음 이 길을 달릴 때 느낌이 어떠했는지 헤아린다. 처음에는 빈 수레를 달고도 오르막이 꽤 벅찼을 텐데, 이제는 수레에 아이를 태우고 수박이며 여러 과일이며를 실은 다음 등에 메는 가방까지 먹을거리로 꾹꾹 눌러담더라도 오르막을 꽤 수월히 오르내린다. 몸이 맞추어지나? 몸이 가벼워지나? 몸이 몸답게 거듭나나?
- 수레까지 붙인 자전거가 오르막을 낑낑거리니 옆으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천천히 앞지르는 자동차가 있다. 자전거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아슬아슬하게 붙어서 씽씽 내달리는 자동차가 있다. 마주 달리는 자동차도 똑같다. 자전거가 마주 달리니까 빠르기를 살며시 늦추어 바람이 거세게 일지 않게끔 마음을 쓰는 자동차가 퍽 드물기는 하지만 더러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맞자동차는 맞바람이 일든지 말든지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 오늘날 아이들이 제 어버이가 수레에 태워 자전거마실을 하지 않는다면, 여느 길에서 자동차가 얼마나 거칠거나 무시무시한지를 느낄 수 없으리라.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자가용을 장만해서 태운다지만, 내 아이는 다치지 않을는지 몰라도 다른 아이들은 다칠 수 있다. 내 아이는 걱정없이 지킨다면서 다른 아이한테는 무시무시하게 구는 셈이 되기도 한다. 아이를 자가용에 태우고 다니는 어른은 당신 아이가 무엇을 배우거나 느낄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 장마당에서 사는 푸성귀가 아닌, 가게에서 사는 푸성귀는 좀 시들시들하면서 값이 세다. 어차피 비 맞으면서 읍내 마실을 한다면, 장날 마실을 해야 한다고 새삼스레 다짐한다.
- 집으로 돌아온다. 장본 먹을거리를 하나하나 꺼내고, 오얏 두 알을 첫째 아이한테 건넨다. 곧 저녁 먹을 때이다. 얼른 씻고 빨래를 한다. 다 마친 빨래를 넌 다음 밥을 한다. 저녁으로는 볶음밥을 한다. 감자 두 알과 호박과 당근과 느타리버섯과 양배추를 잘게 썰어 물에 볶은 다음 밥과 들기름과 간장을 넣고 비빈다. 아침에 먹고 남은 미역국에는 새우살을 더 넣고 팔팔 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