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백선엽이라는 분이 간도특설대에 몸담았던 사람이라고 한다. 한국전쟁에서는 참모총장을 했다고 한다. 나는 1970년대에 태어났으니,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스스로 겪지 못해 모른다. 오직 책에 적힌 이야기로만 들을 뿐이다.

 1970년대에 태어나서 1980∼90년대를 인천에서 살아낸 사람으로서 백선엽이라는 분을 떠올린다면, 인천 제물포역 뒤쪽 도화동에 널찍하게 자리한 ‘선인재단’이다. 선인재단은 백선엽 씨와 백인엽 씨 이름을 따서 붙인 곳으로,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우글우글 모였다.

 선인재단은 사립학교인데, 이 사립학교는 열 해 즈음이던가, 인천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싸우고 싸운 끝에 백선엽 씨와 백인엽 씨한테서 재단을 빼앗아 시립으로 바꾸었다. 왜냐하면, 선인재단이라는 이름으로 학교가 선 뒤로 끝없는 부정부패와 비리와 폭력으로 얼룩졌으니까.

 제물포역 둘레에 갈 때면 우람하게 버틴 선인재단이 드리우는 먹구름 때문에 서슬퍼런 기운에 싫었다. 버스가 선인재단 둘레를 거쳐 갈 때에는 이쪽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몇 만을 웃돌 학생들이 선인재단 수많은 학교에 우글거리도록 하는 일이 참말로 교육이 될는지 알쏭달쏭했다. 뺑뺑이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가야 할 때에, 부디 선인재단에 깃든 학교에 안 걸리도록 비손을 했다. 여중과 여고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남중과 남고는 선인재단 쪽 학교로 가면 교사와 선배가 어마어마하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소리를 일찍부터 들었으니까.

 학교에서 교사는 왜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교과서를 펼칠까. 학교에서 선배들은 왜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쉽게 주먹을 붕붕 휘두르며 걸어다닐까. 학교에서 또래 동무들은 왜 서로 무리를 지어 패싸움을 벌이거나 돌림뱅이 짓을 벌이려 할까. 학교라는 곳에서 조용하면서 착하게 배우고 어깨동무할 수는 없을까.

 한국전쟁에서 훈장을 받을 만큼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면, 아무래도 ‘전쟁 영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으리라. 그런데, 전쟁 영웅이란 무엇이지? 사람을 더 많이 죽인 사람이 영웅 아닌가? 적군이라는 사람을 더 많이 더 빨리 더 쉽게 죽여야 영웅 아닌가?

 군대에서 장교로 있는 사람은 명령을 내리고 지시를 한다. 군화발로 걷어차며 어서 총알받이로 달려가라고 뒤에서 내몬다. 적군을 수없이 쓰러뜨리려고 아군이라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이 쓰러져야 했을까. 적군을 죽이는 숫자만큼 아군이라는 사람도 죽어야 하지 않았을까. 두 나라 총알받이 군인, 곧 여느 사람들은 왜 싸움터로 나와서 낯도 이름도 모르는 서로를 나쁜 놈이라 여기면서 죽이고 죽어야 할까.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흙을 일구며 착하게 살아가면 될 이웃이 아닌가.

 내 어릴 적 인천에서 지내던 나날을 곰곰이 떠올린다. 교사는 몇 해에 한 번씩 학교를 바꾼다. 나는 고맙게도 선인재단 쪽 학교에 안 걸리며 여섯 해를 보냈으나,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아주 마땅히 선인재단에서 일하던 교사가 들어오기 마련이다. 선인재단에서 일하던 교사가 들어온다고 하면 우리들 사이에서 수근수근 이야기가 퍼진다. “야, 선인재단 내기는 되게 무섭다며?” “선인재단에서는 엄청나게 줘팬다는데, 거기에서 온 선생은 어떨까?” “그 선생이 우리 학년을 안 맡으면 좋겠는데.”

 선인재단이 사립재벌에서 시립으로 바뀐 지 어느덧 열 해 즈음 되는 듯하지만, 나는 아직도 선인재단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또 선인재단 이름 넉 자를 이루는 백선엽 씨 이름을 들을 때마다, 시커먼 소름이 돋는다. 부디, 백선엽 씨가 스스로 영웅이라는 이름표를 내려놓고, 백선엽 씨가 거느리는 널따란 산과 들에서 조용하면서 호젓하게 흙을 일구면서 무랑 당근이랑 배추랑 오이랑 가지랑 고추랑 감자랑 고구마를 길러서 예쁘게 살아가시기를 빈다. (4344.6.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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