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는 왜 글을 배워야 하는가


 알프스 알름산에서 살아가던 하이디는 거짓말하는 이모 손에 이끌려 프랑크푸르트라는 큰도시로 갑니다. 흰눈이 덮이는 높은 멧봉우리에서 할아버지랑 양치기 오빠랑 염소랑 새랑 개랑 나무랑 벌판이랑 사귀고 싶은 하이디는 큰도시를 갑갑한 구멍이라고 느낍니다. 여덟 살 하이디가 할 줄 아는 일이란 염소젖 짜기입니다. 여덟 살 하이디는 글을 읽을 줄 모를 뿐더러, 책을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알프스 알름산에서 함께 살아가는 할아버지나 이웃 할머니나 양치기 오빠 또한 책을 들여다본 적이 없거나 책을 살필 일이 없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집에 모여 수많은 일을 하고 수많은 돈을 벌거나 쓰면서 살아갑니다. 프랑크푸르트 구멍집 창문은 조그마할 뿐 아니라 좀처럼 열리지 않는데다가, 애써 창문을 연달지라도 똑같이 생긴 구멍집만 바라볼 뿐입니다. 드넓은 하늘과 벌판과 나무와 숲과 멧짐승과 멧새와 흰눈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매캐한 바람이 불고 매서운 마음씨만 가득합니다. 너른 곳에서 너른 바람이 불며 너른 마음으로 사귀는 사람을 더는 마주하기 힘듭니다.

 생각해 보면, 알프스 알름산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때에는 굳이 종이에 새겨진 글을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흰눈이 책이고 파란하늘이 책이며 푸른들과 우거진 숲이 책입니다. 염소젖을 짤 때에 몽클몽클한 젖퉁이가 책이고, 멧새가 우짖는 소리가 모조리 책이에요. 프랑크푸르트 같은 큰도시에서는 살가이 사귈 이웃이나 동무가 아니기 때문에, 혼자 외로우니까 종이에 새긴 글을 곰곰이 팔밖에 없습니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면 큰도시에서는 일자리조차 얻을 수 없고,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어들여도 느긋하거나 따숩게 쉴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는 힘듭니다.

 여덟 살 하이디는 글을 배워야 할까요. 여덟 살 하이디는 학교에 다녀야 즐거운 앞날이 열릴까요. 여덟 살 하이디는 글을 배우지 않고 깊은 멧봉우리에서 할아버지하고 둘이 살아가는 일이 괴롭거나 나쁜 일이 될까요. 여덟 살 하이디가 학교에 다닌다면 누가 무엇을 가르치며 하이디가 앞으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기를 바랄까요. (4344.6.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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