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지는 빛
새벽 네 시 반, 달 지는 빛을 본다. 밭 가장자리에 오줌을 누면서 달 지는 빛만 마냥 바라본다. 고개를 돌려 맞은편 해 뜨는 빛을 함께 바라본다. 해가 뜨는 빛살이랑 달이 지는 빛살이랑 똑같다. 지는 달과 뜨는 해는 같은 빛무늬이다.
어릴 적에도 달 지는 빛을 본 적 있었을까. 자주는 아니지만 드물게 보았다고 떠오른다. 아주 드물게, 몹시 드물게, 한 해에 한 번쯤, 두어 해에 한 번쯤 보았다고 떠오른다.
달 지는 빛을 이야기한 어른이나 동무는 없었다. 달 지는 빛을 보여준 어른이나 동무도 없었다. 나 또한 동무한테 달 지는 빛을 보여줄 수 없었다. 돌이켜보니, 이제껏 살아오며 내 둘레 살붙이라든지 이웃한테 달 지는 빛을 이야기한 적조차 없었다고 느낀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이웃마을을 천천히 돌던 요 며칠 헉헉거리면서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 혼자 헉헉거리는 자전거마실이 아이한테 뜻이 있을까. 아이 또한 헉헉거리며 길을 달려야 보람이 있을까. 아이랑 어버이가 즐기는 자전거마실이란 무엇일까. 아주 머나먼 길을 달릴 때에 자전거마실이라 할 만할까. 아이를 수레에 태우는 일하고 자가용에 태우는 일은 얼마나 다를까. 나는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무슨 삶을 보여주고 어떤 길을 지나며 이렇게 함께 오가는가.
자전거는 어느새 논둑길을 달리고, 아이는 내려 달라며 아버지를 부른다. 아이는 수레에서 내려 논둑길을 작은 발 콩콩거리면서 내닫는다. 벼포기를 바라보고 논물을 바라보며 먼 멧등성이를 바라본다. 아이가 바라보는 곳을 아버지가 바라보고, 아버지가 바라보는 데를 아이가 바라본다.
밤오줌을 스스로 가릴 줄 아는 나이가 된다면, 우리 집 첫째도 머잖아 아버지하고 달 지는 빛을 함께 바라볼 수 있겠지. (4344.6.17.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