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과 책읽기


 자가용을 모는 사람은 책을 읽지 못한다. 버스를 모는 이 가운데 무척 드물게 운전대 옆에 책 하나 놓고 틈틈이 읽는 사람이 있다지만, 자가용 모는 사람 가운데 운전대 옆에 책 하나 놓으며 틈틈이 읽는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짐차를 몰거나 택시를 모는 사람은 어떠할까. 온누리 온갖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모는 겨를하고 책을 읽는 겨를이 어떻게 될까.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누구나 앞을 보며 달린다. 옆을 보거나 뒤를 볼 수 없다. 다른 자동차하고 받거나 스치지 않자면 옆거울이나 뒷거울을 본다. 그렇지만 옆이나 뒤를 보지는 않는다. 앞을 바라본다 하더라도 앞산이나 앞들이나 앞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 오직 앞길과 앞차만 바라볼 수 있다.

 집에서 식구들을 태우는 자가용일 때에는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다. 모든 삶터는 휙휙 스친다. 달리기를 멈추고 오래도록 한 곳에서 느끼거나 누리거나 생각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숲 사이 찻길을 달린다 하더라도 스치면서 살짝 맛보는 숲길이 될 뿐, 오래도록 멈추어서 숲과 바람과 하늘과 멧새와 풀벌레가 어찌 어우러지는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

 모든 자동차는 소리가 시끄럽다. 모든 자동차는 라디오를 틀든 노래를 듣든 소리를 키워야 들린다. 모든 자동차는 바깥에서 어떠한 소리가 나는지 들을 수 없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귀뚜라미가 울든 꾀꼬리가 울든 아이들이 조잘조잘 놀이노래를 부르든 자동차는 이 모든 소리를 듣지 않는다. 이뿐 아니라 둘레 모든 소리를 잠재우고야 만다.

 모든 자동차는 아주 바쁘다. 가까운 길이든 머나먼 길이든 더 빨리 달리도록 하는 자동차일 뿐이다. 가까운 길을 가깝게 즐기거나 머나먼 길을 머나멀게 누리도록 하는 자동차는 없다.

 오토바이를 타면 바람을 짜릿하게 맛본다지. 그래, 바람을 짜릿하게 맛보기는 한다. 그렇지만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 소리가 크게 난다. 둘레 소리를 죄 잠재울 뿐 아니라, 바람을 짜릿하게 맞는 동안 둘레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산들바람에 숲나무마다 나뭇잎이 반짝반짝 나부끼며 예쁜 소리를 내든, 어미새가 먹이를 찾아 새끼새한테 먹이며 고운 소리를 내든,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 더 소리를 죽이고 더 삶을 죽인다.

 자동차를 몰면 운전대 옆에 책을 얹는다든지 놓으면서 건널목 신호에 걸릴 때에 들출 수 있는지 모르나, 오토바이를 몰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로지 오토바이를 몰기만 할 뿐이다.

 나는 나부터 자가용이 되든 오토바이가 되든 몰거나 가지고 싶지 않다. 책읽기를 등질 뿐 아니라 책읽기를 짓밟는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는 밉다. 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나중에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를 몰겠다 할 수 있겠지. 다 큰 아이들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말라 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다 큰 아이들은 저희 하고픈 대로 해야 한다. 다만, 아이들한테 한 가지를 느끼도록 한 다음 저희 하고픈 대로 하라고 해야 어버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소리와 냄새와 바람과 숲과 새와 흙과 햇살과 나무와 하늘과 별과 달과 냇물과 골목을 조용히 맞아들이고 나서 저희 하고픈 대로 하도록 하고 싶다. 이원수·이오덕·권정생·임길택·송건호·리영희·김남주·신동엽·김수영·고정희·윤정모·박경리 같은 사람들 글을 좋아하거나 아끼는 아이로 자란다면, 아이들은 맑으면서 밝은 길을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갈 테지. (4344.6.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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