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귀에 읽는 책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생각 밖으로 많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 책에 실린 줄거리를 살피기만 할 뿐 아니라, 부끄럽다고 느껴야 하거나 슬프다고 느껴야 하는 대목이 꼭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조금도 부끄럽다고 안 느끼거나 하나도 안 슬프다고 느끼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책을 읽건 책을 읽지 않건 삶이나 생각이나 사랑이 달라지지 않는 사람이 퍽 많아요.

 책을 읽는다 할 때에는 내 삶과 생각과 사랑이 거듭나도록 힘쓰겠다는 뜻입니다. 좋은 벗님을 사귄다 할 때에도 내 삶과 생각과 사랑이 다시 태어나도록 애쓰겠다는 매무새입니다.

 마음을 나누는 벗님이란 내가 어려울 때에 곧장 달려와서 돕는 벗님이 아닙니다. 날마다 새롭게 발돋움하면서 더 아름다이 내 삶을 가꾸는 나날을 즐기겠다며 가까이에서 사귀는 마음벗입니다.

 마음으로 읽는 책이고 마음을 읽는 책입니다. 마음을 들여 내 삶과 생각과 사랑이 어떠한가를 되씹는 책입니다. 마음으로 읽으면서 글쓴이를 비롯해 내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가 어떠한 삶과 생각과 사랑인가를 돌아보자는 책입니다.

 스스로 제 삶을 한껏 북돋우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들 부질없습니다. 앎조각은 머리에 채우지만, 몸으로는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거든요. 몸소 제 삶을 한결 보살피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훌륭하다는 책을 읽어도 가슴이 울렁거리지 않습니다. 한 줄을 읽든 한 권을 읽든 만 권을 읽든 몸소 부대끼는 삶을 되짚으면서 맑은 넋과 밝은 얼을 키워야 합니다.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생각 밖으로 많지 않으나, 책을 읽는 사람 또한 생각 밖으로 제법 많다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려는 사람 못지않게 책을 읽는 사람 스스로 책을 왜 읽고 책을 어떻게 읽으며 책으로 무슨 삶을 길어올리려는가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새로운 책은 쏟아지고, 무척 많이 팔린다든지 꾸준히 팔린다든지 하는 책은 꽤 많습니다만, 새로 거듭났다고 하는 사람이라든지 다시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이라든지 아름다운 삶길을 걸으려 하는 사람이라든지 사랑스러운 꿈을 키우는 사람이라든지, 뜻밖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모두 소 귀에 읽는 책이고, 한결같이 소 귀에 읽히는 책입니다. (4344.6.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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