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작은 방


 병원 작은 방에는 텅 빈 냉장고하고 큼지막한 텔레비전이 있다. 휴지 한 장 이불 하나 따로 없을 뿐 아니라, 빨래비누나 대야조차 없다. 둘째를 낳은 대학병원에서 입원수속을 하는데, 간호사들은 우리한테 아무런 이야기 없이 무턱대고 4인실 자리를 잡았다고 알려준다. 병실이 어떻게 있다고 밝힌 다음 어디를 쓰겠는지 물어야 하지 않나? 이 사람들은 네 살 아이가 있는 집안 사람들이 4인실 방에서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다른 애 어머니와 견줄 수 없이 몸이 대단히 나쁠 뿐더러 여린 옆지기를 여느 4인실에 둘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알쏭달쏭하다. 간호사 말을 끊고 불쑥 말한다. 여기 1인실은 없나요? 1인실이요? 있어요. 4인실은 얼마쯤 하나요? 4인실은 4만 원이요. 1인실은요? 1인실은 10만 원이요. 그러면 1인실로 해 주셔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네, 저희는 아이도 있고 애 어머니하고 함께 자야 하는데 1인실로 해야 해요.

 첫째를 낳던 병원을 떠올린다. 첫째를 낳던 인천 병원에도 이곳 충주 병원과 마찬가지로 텅 빈 냉장고하고 큼지막한 텔레비전이 있었다. 다만, 휴지는 있었는데, 인천 병원에서도 대야와 빨래비누와 이불은 없어서 집에서 모조리 들고 왔다. 인천에서는 집과 병원이 가까웠지만, 시골집에서는 자가용으로 40분은 달려야 하는 먼길이다. 자가용 없는 우리 식구는 여러 사람한테 도와주십사 이야기해서 겨우 이것저것 챙겼다.

 병원 작은 방에서 아이가 뛰어놀라 하기란 몹시 힘들다. 그래도 아이는 잘 뛰어놀아 주었다. 잘 견디어 주었다. 새벽 두 시 사십오 분부터 깨어서 낮에 두 시간 살짝 잠들었을 뿐, 졸리면서 잠을 안 자는 아이는 이 작은 병원 방에서 온힘을 짜내어 제 어머니 아버지하고 살아내 준다. 아이가 얼마나 심심해 할까 걱정스럽지만, 몸이 힘든 아버지는 제대로 돌봐 주지 못한다. 옆지기 몸이 썩 좋지는 않지만, 개인 병실로 옮긴 다음 몇 시간 지나서 아이 손을 붙잡고 바깥으로 나온다. 병원 앞 문방구에 들러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산다. 아이는 제 손바닥에 꼭 쥘 만한 작은 수첩 둘을 쥔다. 하나만 하면 안 되겠니? 응, 안 돼. 둘 다 할래? 응, 둘 다 할래. 하나에 400원짜리 작은 수첩을 둘 나란히 사 준다. 병원으로 돌아온 아이하고 한 시간 남짓 그림을 그리면서 논다. 그러나 한 시간 뒤에는 무슨 놀이를 해 줄까. 옆지기가 텔레비전 켜 주라 이야기한다. 드디어 텔레비전을 켜서 만화영화 나오는 곳을 찾는다. 만화영화이든 다른 뭐뭐이든 그닥 재미나지 않을 뿐더러 아이하고 신나게 볼 만하다고 느끼기 힘들다. 광고는 너무 시끄러우면서 쓰잘데없다. 한 시간 남짓 텔레비전을 보았나 싶은데 눈과 귀가 몹시 아프다.

 인천 병원에서도 그랬지만, 충주 병원에서도 책 있는 자리란 없다. 적어도 병의학을 다룬 책이라든지, 아이를 낳을 어머니나 아버지나 식구나 살붙이나 이웃이 읽ㅡ,,으면서 헤아릴 만한 책 하나조차 없다. 아니, 어린이 그림책이나 동화책마저 없다. 아이들이 갖고 놀 만한 놀잇감 또한 없다. 요사이에는 사람들이 아이를 잘 안 낳는다지만, 두셋 낳는 집안이 아예 없지 않을 뿐더러, 제법 있다. 둘째나 셋째를 낳으려고 병원에 오는 어머니들이 많다. 그렇지만, 첫째나 둘째가 병원에서 놀거나 읽을 거리는 아무것도 없다시피 할 뿐더러, 병원에서 함께 지내는 아버지 될 사람들이 ‘아이낳기’와 ‘살림하기’와 ‘집일하기’를 깨우치도록 돕는 책이란 한 가지도 없다. 애 아버지가 애 어머니한테 해 줄 국과 밥 몇 가지라도 하도록 도와주는 요리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를 사랑하면서 돌보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병원 의사나 간호사는 무슨 책을 읽을까. 그저 셈틀 앞에 앉아서 인터넷 바다를 누빌 뿐인가.

 병원 작은 방이든 긴 골마루이든 분만대기실이든 어디이든, 책이 놓이는 병원을 한국땅에서 꿈꾸고 싶다. 아름답거나 훌륭한 책이 놓이자면 아주아주 오래오래 걸릴 테지만, 적어도 후줄그레한 잡지 하나라도 놓일 책꽂이가 있는 병원 작은 방을 꿈꾼다. (4344.5.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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