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책읽기


 아이가 책을 읽는다. 아버지가 그림책을 집어들어 펼치면 저도 함께 읽겠다면서 아버지 무르팍으로 파고든다. 책을 읽는 아버지 곁에서 아이는 책을 읽는 아이가 된다. 아버지가 옷을 갈아입고 자전거를 탈 낌새를 보이면 아이는 금세 알아챈다. 자전거를 타는 아버지 둘레에서 아이는 자전거를 함께 타는 아이가 된다. 부엌으로 가서 밥을 할라치면 아이는 어느새 부엌으로 쪼르르 따라온다. 마늘을 빻거나 달걀을 풀거나 반죽을 하거나 다지거나 채 썬 푸성귀나 나물을 냄비에 부을 때에, 아이는 옆에서 제가 하겠다고 나선다. 밥상을 세워 다리를 펴려 하면 아이는 이때에도 제가 하겠다고 먼저 붙잡는다. 텃밭으로 가려고 호미를 쥐면 아이는 부리나케 쪼르르 달려와서 저한테도 호미를 달라며 부르다가는 아버지 곁에서 흙을 쫀다.

 아이가 책을 읽는다. 아버지가 그림책 아닌 글책을 읽으니, 글책은 그닥 볼거리가 없으니 제 그림책을 펼쳐 읽는다. 아이는 책을 읽을 때에 그림책을 무릎에 올려놓는다. 그림책 끄트머리에는 으레 아이 발가락이 뽀롱 나온다. 아이는 그림책을 보면서 발가락이 가만히 있기도 하지만, 꼬물꼬물 꼼지락꼼지락 하기도 한다. 깊이 빠져들 때에는 발가락이 얌전하고, 종알종알 떠들며 책장을 넘긴다든지 앞뒤가 궁금해서 요모조모 들출 때에는 발가락이 춤춘다.

 한참 책을 넘기고 펼치고 하더니 손가락으로 하나를 짚으며 나한테 묻는다. 나보고 같이 들여다보라며 부른다. 아이는 맛난 먹을거리를 혼자 먹지 않고 나눈다. 아이는 좋은 볼거리를 혼자 보지 않고 부른다. (4344.5.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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