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는 마음


 책은 읽으려고 삽니다. 읽으려고 산 책은 집에서 건사합니다. 내가 내 돈을 들여 산 책이란, 내 아름다운 나날을 바쳐서 일하며 얻은 돈으로 산 책이며, 책을 사려고 이모저모 품과 겨를을 들이기 마련입니다. 책 하나는 책 뒤에 적힌 값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애써 사들인 책을 기쁘게 읽곤 하지만, 애써 사들인 책이면서 그닥 내키지 않거나 생각과 달라 한쪽에 처박아 두기도 합니다. 나로서는 기쁘게 읽은 책이라 하나, 다른 집식구는 썩 안 좋아하는 책일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달갑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은 책이었는데, 다른 집식구한테는 뜻밖에 새 넋과 새 길을 여는 좋은 길동무가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장만해서 건사한 책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스스로 일구어 엮은 책을 이어받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어른이 빚은 아름다운 책은 아름다운 책대로 물려받습니다. 오늘을 산다는 어른이 만든 어설프거나 못난 책 또한 어설프거나 못난 책대로 이어받습니다.

 책을 살 때면 늘 내 아이를 떠올립니다. 네 살 첫째와 올해 태어날 둘째가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에 제 어버이가 오랜 나날에 걸쳐 장만해서 집안에 건사한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 만할까 떠올립니다.

 옆지기는 말합니다. 아이가 나중에 읽을 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오늘 우리가 기쁘게 읽을 책이라고 생각하며 장만해서 읽어야 한다고.

 옆지기 말을 오래오래 곱씹습니다. 뒷날 우리 아이가 제 어버이 책을 좋아할는지 싫어할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어버이가 아무리 좋아하던 책이라 하더라도 아이한테는 불쏘시개로 그칠 수 있습니다. 어버이가 못마땅해 하던 책인데 아이한테는 더없이 좋은 삶동무일 수 있습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버이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사랑할 책이어야 합니다. 아이가 나중에 아끼거나 안 아끼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오늘 하루 아름다이 삶을 일구는 좋은 마음동무이자 길벗이 될 책으로 삼아야 합니다.

 책을 살 때면 으레 생각합니다. 이 책은 우리 아이에 앞서 어버이인 나 스스로 먼저 사랑하려고 장만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책을 사건 동화책을 사건, 어버이 스스로 즐기려고 장만하는 그림책이며 동화책입니다. 아이 마음을 살찌운다거나 아이 생각을 북돋우려고 장만하는 책은 없습니다. 아이한테 밑거름이 되거나 가르침을 들려주려는 책 또한 없어요. 어버이 스스로 내 밑거름으로 삼거나 내 가르침으로 삼는 그림책이거나 동화책입니다. 어버이 스스로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즐겁게 배우려 하는 그림책이거나 동화책이에요.

 어버이부터 살뜰히 배우지 않는 책이면서 아이가 살뜰히 배울 책은 없다고 느낍니다. 어버이부터 예쁘게 곰삭일 책일 때에 아이한테도 예쁘게 곰삭이도록 이끌 책이 된다고 느낍니다. 어버이부터 착하게 아로새기는 책이기에 아이를 무릎에 앉히면서 조곤조곤 읽을 수 있는 책이 되리라 믿습니다.

 어린이책이나 어른책이 따로 없습니다. 그예 책입니다. 어린이한테만 읽히는 어린이책이란 없고, 어른만 읽을 어른책 또한 없습니다. (4344.5.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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