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머리 앤〉을 보는 마음


 아이와 옆지기와 아버지가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본다. 여러 해째 함께 본다. 여러 해째 함께 보지만, 볼 때마다 이야기에 찬찬히 빨려든다. 엊그제 옆지기가 한 말을 곰곰이 되새긴다.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은 참 빛깔 곱게 그린 작품이라 했다. 그런가? 그런가? 그동안 어렴풋하던 무엇인가 비로소 풀린다. 그렇구나. 빛깔 곱게 그린 작품이기 때문에 여러 해째 되풀이해서 들여다보지만, 이렇게 살뜰히 즐길 수 있구나.

 하루를 지나며 더 생각한다. 어쩌면 오늘날 사람들은 빛깔 고운 사람과 삶과 자연을 잊거나 잃거나 모르기 때문에,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보더라도 그닥 재미나다고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100번이나 1000번쯤 다시 볼 마음을 못 품을는지 모른다. 게다가,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에 담은 빛깔 고운 모습과 삶과 사람들 이야기를 오늘날 새롭게 엮으며 나누려 할 뜻이나 꿈을 못 품을는지 모른다.

 사진기를 들어 만화영화 몇 대목을 찍는다. 문득 옆지기가 엊그제 했던 말을 한 가지 더 떠올린다. 디브이디를 사고 싶다 했는데, 참말 디브이디를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두 사람과 우리 두 아이와 나중에 두 아이가 낳을는지 모르는 새 아이들을 헤아린다면, 살림돈이 빠듯해 빡빡한 하루하루이지만, 조금씩 갈무리해서 〈빨간머리 앤〉 디브이디를 통째로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부디, 내가 돈을 갈무리할 때까지 〈빨간머리 앤〉 디브이디가 남아 다오. (4344.5.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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