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하지 않은 날


 요즈음 들어 아이 옷가지 빨래가 크게 줄었다. 벌써 닷새 남짓인가, 밤나절 아이 오줌기저귀 빨래가 나오지 않는다. 아이 오줌기저귀 빨래가 나오지 않으니 빨래할 일이 크게 줄어든다. 옆지기 빨래라든지 아이 겉옷 빨래야 하루쯤 미루어 몰아서 해도 되니까, 요사이는 빨래를 안 하고 건너뛰는 날이 곧잘 있다. 나는 내 옷을 더디 빤다. 식구들 빨래가 적은 날 내 옷을 한두 점쯤 끼워서 빤다.

 얼마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날마다 한 시간 즈음 빨래를 하지 않으면 하루치 빨래라 하더라도 잔뜩 쌓이는 나날이었는데, 아이가 밤에 오줌을 잘 가리니까 이렇게도 빨래가 줄어드는구나. 놀라우면서 새삼스럽고, 반가우면서 고맙다. 그렇지만 다음달에 둘째가 태어나면 다시금 빨래쟁이 나날을 맞이할 테지. 어쩌면 우리 첫째는 제 어버이가 그동안 빨래살이로 몹시 고되었으니 한동안 쉬게 해 주는지 모른다. 둘째가 태어나면 날이면 날마다 기저귀이며 배냇저고리이며 똥옷 오줌옷, 여기에 이부자리와 물막이깔개까지, 빨래가 넘치고 넘치리라. 첫째와 함께 살아오며 실컷 겪었으니까.

 날마다 빨래살이를 하는 동안 ‘이다지도 많은 빨래를 언제까지나 이렇게 해야 하나. 우리 아이는 언제쯤 혼자서 제 옷을 빨래할 날을 맞이하려나.’ 하고 노래를 했다. 아이가 커서 스스로 제 옷을 빨래할 즈음 된다면, 아이가 더 커서 제 어버이만큼 자라나 사랑하는 짝꿍을 만나고 혼인을 하거나 제금을 나서 제 아이를 낳아 키우며 제 아이 옷가지를 빨래한다면 제 어버이가 저를 낳아 키울 때에 어떠한 빨래살이를 치러야 했는지 몸으로 느낄 테지.

 머리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오로지 몸으로 알 뿐이다. 책을 수없이 읽는달지라도 알 수 없다. 오직 스스로 몸을 바쳐 겪을 때에 알 뿐이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는 책으로 낼 수 없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는 스스로 하루하루 보내는 나날이 주름살과 꾸덕살에 아로새겨질 뿐이다. (4344.4.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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