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4.12.
 : 자전거수레 달고 달리기



- 어제 들은 옆지기 말을 곱씹으며 자전거를 달린다. 수레를 달면 아버지는 한결 느리게 달릴밖에 없다. 느리게 달리지만 더 힘들다. 더 힘들기는 한데, 차분하게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길바닥을 더 살피고 더 좋은 길을 달리려고 한다. 시골길을 달리는 자동차이든 도시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이든, 자전거는 아랑곳하지 않기 일쑤이다. 맨몸뚱이 자전거라면 옆에 바싹 붙어 달리는 자동차가 많다. 자전거에 수레를 달아도 어슷비슷하게 바싹 붙으며 차에 치일락 말락 으르렁거리는 자동차는 어김없이 있다. 그래도 자전거로만 달릴 때하고 견주면 훨씬 홀가분하다. 옆지기가 수레 달고 나간 아버지를 덜 걱정하는 마음은 알 만하다. 자전거를 몰며 몸이 찌뿌둥하기는 하지만, 나 또한 아이와 함께 달린다는 생각에 더 신나게 자전거를 몰 수 있기도 하다. 아이하고 이 길을 걷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 그저 싱싱 달릴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수레를 달 까닭이 없다. 그냥 빨리만 달리려 했다면 굳이 시골로 살림집을 옮길 까닭이 없다. 도시에서 살던 때에도 돈을 많이 준다는 일자리를 찾아 일하면 되고, 아이 돌보는 몫은 오로지 옆지기한테 떠맡기거나 어린이집에 넣을 노릇이겠지. 빨리빨리가 내키지 않을 뿐 아니라 못마땅하니까, 내 삶과 옆지기 삶과 우리 식구 삶은 빨리빨리가 아닌 알맞으면서 즐거운 나날이 되기를 바라니까, 나는 이러한 내 삶결대로 내 자전거를 몰아야 좋다.

- 빨리빨리 달릴 생각이라면 자전거는 아예 생각할 일이 없다. 자가용 한 대 뽑으면 되잖아. 자가용 값과 기름 넣을 값을 벌자며 아주 마땅히 큰돈 주는 일자리에서 번듯하게 양복 빼입으며 흐느적거릴 노릇일 테고.

- 나는 돈보다 내 삶이 좋다. 나는 이름값보다 우리 식구들과 복닥이는 나날이 좋다. 나는 새소리와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좋다. 나는 햇볕이 좋고 흙이 좋으며 푸나무가 좋다. 두 다리를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천천히 거닐 때에 즐겁고, 두 다리로 자전거 발판을 밟으며 시원스레 바람을 맞으면 기쁘다.

- 사진찍기와 글쓰기를 하는 나는 늘 한 가지를 생각한다. 달리는 자가용에서는 사진을 못 찍고 글을 못 쓰며 책을 못 읽는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사진이고 글이고 책이고 없다. 사랑이고 삶이며 사람 또한 없다. 운전대 잡은 사람이 길가 자전거라든지 골목길 뛰노는 아이를 살피기를 바랄 수 없다. 운전대 잡은 사람은 그예 앞으로 더 빨리 나아갈 뿐이다. 사진찍기와 글쓰기를 하면서 살아가자면, 여기에 책읽기를 하면서 살아가자면, 나로서는 두 다리로 즐겁게 거닐다가 자전거를 타고 느긋하게 달리면 넉넉할 뿐이다. 자전거에는 수레를 달고 틈틈이 아이와 함께 마실을 다녀야지.

- 다른 사람들도 자전거에 수레를 달아 아이를 태우라고 말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한테 자가용 좀 제발 버리라고 말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보고 도시를 떠나거나 도시에서 살더라도 돈을 적게 벌며 조용히 살아가는 길을 찾자고 말할 수 없다. 다들 생각이 있고 사랑이 있을 테니까, 제 생각과 사랑을 살찌울 노릇이다.

- 쌀을 사러 보리밥집에 간다. 우리 집은 풀무학교생협에서 쌀을 받는다. 한 달은 우리가 받아서 먹고, 한 달은 일산 옆지기네로 보내곤 했는데, 이달에 처음으로 집쌀이 다 떨어졌다. 두 달이 좀 안 되었는데 세 식구가 쌀 10킬로그램을 다 먹었다. 아이가 밥을 꽤 잘 먹어 주었기 때문에 쌀이 벌써 떨어졌구나 싶다. 여태껏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어 주어 꽤나 골머리를 앓았는데, 이제는 이렇게 잘 먹고 잘 크는구나. 아이한테 “아빠 쌀 사러 자전거 타고 나가는데 같이 갈래?” 하고 묻는다. 아이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고개를 홱 돌린다. 졸음이 가득한 얼굴로 어머니랑 셈틀 앞에 앉아서 영화를 보겠단다. 자전거 태워 준다는데 안 가는 날이 다 있네, 하고 놀라며 혼자서 길을 나선다. 그런데 지갑을 집에 놓고 나왔다. 외상을 걸고 이듬날 다시 와서 쌀값이랑 이것저것 장만한 먹을거리 값을 치르기로 한다. 집으로 돌아오니, 옆지기가 나를 두고 참 바보라고 말한다. 바보 맞지. 바보 맞아.

- 저녁에 해 기울 무렵 집을 나섰기에, 오늘은 사진기를 안 챙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