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밖 나들이와 책읽기


 사람들은 나들이를 떠납니다. 어떤 이는 작은 수레를 끌고 골목골목 빈병이랑 헌 종이를 주으러 나들이를 떠납니다. 어떤 이는 장마당 나들이를 하려고 닷새나 열흘이나 한 달에 한 번쯤 읍내로 나들이를 떠납니다.

 어떤 이는 자가용을 몰고 언제나 나들이를 다닙니다. 어떤 이는 비행기를 타고 여러 나라로 나들이를 다닙니다. 어떤 이는 시외버스를 타고 나라안 곳곳 나들이를 다니고, 어떤 이는 기차를 타고 서울부터 부산까지 씽씽 오가는 나들이를 다닙니다.

 어떤 이는 대학바라기 문제집 풀이에 얽매여 나들이를 꿈꾸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대학바라기 문제집 풀이에 얽매이지만 집과 학교를 오가는 길을 나들이길이라 여깁니다. 어떤 이는 집일과 집살림을 하느라 오로지 집에서만 지냅니다. 어떤 이는 집안 이곳저곳 손질하고 돌보면서 집안을 돌아다니는 나들이를 합니다.

 어떤 이는 자리에 드러누운 채 보꾹만 올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나들이를 합니다. 어떤 이는 자리에 드러누운 채 때때로 창밖을 내다보며 눈길로 나들이를 합니다. 어떤 이는 조용히 숨을 거두면서 이제 또다른 누리로 나들이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갈래에 따라 수많은 곳을 찾아 수많은 숫자만큼 다 다르게 나들이를 합니다. 누군가는 내 보금자리에서도 빛을 보고, 누군가는 내 자그마한 마을에서도 빛을 보며, 누군가는 요 조그마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빛을 봅니다. 누군가는 티벳이나 인도나 네팔쯤은 돌아다녀 보아야 빛을 보고, 누군가는 미국이나 영국이나 프랑스쯤 밟아 보아야 빛을 보며, 누군가는 일본이나 중국이나 러시아쯤 둘러볼 때에 빛을 봅니다.

 어디에서든 빛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으로서 프랑스에 찾아가 빛을 볼 수 있고, 프랑스사람으로서 프랑스에서 빛을 볼 수 있으나, 프랑스사람이기에 한국 같은 나라까지 찾아가서 빛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사람은 한국사람이 프랑스까지 찾아와서 빛을 보려 할 때에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할까요. 일본사람은 한국사람이 일본까지 찾아와서 빛을 본다고 할 때에 무슨 느낌이거나 생각일까요. 노르웨이사람은 노르웨이까지 찾아올 드문 한국사람을 마주한다면 이들 한국사람이 어떠한 빛을 찾아 예까지 찾아왔을까 하고 생각할까요.

 한국은 참 작고 좁은 나라입니다. 한국에서만 지내면 우물 안 개구리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참말 작고 좁은 나라 한국땅을 다 돌아보거나 모두 밟은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자동차를 몰아 한 번 슥 지나갔대서 돌아보았다 할 만할까요. 두 다리로 찻길을 따라 한 바퀴 빙 걸어다니기를 했대서 모두 밟았다 할 만한가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느끼지 않고서, 비와 눈과 바람과 구름과 햇볕과 물과 흙과 풀과 나무과 벌레와 짐승을 고루 느끼지 않으면서, 사람과 삶터와 마을을 어깨동무하거나 두레라든지 울력을 하지 않았으면서, 우리는 무슨 나들이를 했다고 말할 만한가 잘 모르겠습니다.

 좁디좁은 한국에서 나들이를 하든, 넓디넓은 지구별 곳곳에서 나들이를 하든, 나들이는 내 마음을 살며시 열며 나하고 마주하는 사람 마음으로 살며시 깃드는 나들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먼길 나들이는 먼길 나들이대로 즐거우며 뜻있습니다. 가까운 나들이는 가까운 나들이대로 기쁘며 값있습니다. 내 보금자리 돌보며 보살피는 살림마실은 내 보금자리 살림마실대로 어여쁘며 알뜰합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인도에서 지냈지 버마나 네팔이나 티벳에서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림쟁이 밀레 님은 프랑스에서 살았지 아프리카나 칠레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이오덕 님은 멧골자락 작은 학교 아이들하고 노래하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미리내 빛깔을 느꼈습니다. (4344.3.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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