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글과 글쓰기


 헐떡헐떡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떨리는 손으로 부들부들 몇 글자 끄적인다. 그렇지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나 마음에 피어오르는 모든 이야기를 적바림하지 못한다. 한두 낱말을 적으면서 나중에 수첩을 다시 펼칠 때에 왜 이 낱말을 적었는지 떠올릴 수 있을 만하게 해 놓는다.

 자전거 발판을 밟는다. 등허리가 결리고 팔뚝이 저린다. 그래도 좋다. 내 몸을 내 힘을 써서 움직일 때에 참 기쁘다. 날마다 빨래에 밥하기에 설거지에 갖은 집일을 하면서 몸을 쓰기에 기쁘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살림을 한다고는 여기지 못한다.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자전거를 달리든, 혼자 부리나케 읍내 장마당에 다녀오느라 자전거를 달리든, 뒷주머니나 옆주머니에 작은 수첩을 챙겨 넣는다. 자전거를 살짝 세워야 할 때에 수첩을 꺼내어 땀내 나는 글을 적바림한다. 때때로 일부러 자전거를 멈추어, 머리속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조각을 글로 옮긴다.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어 주다가, 아이 손을 잡고 춤을 추다가,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다가, 문득문득 뭔가가 자꾸자꾸 생각나서 수첩을 펼쳐 쪽글을 적는다.

 쪽글 적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는 저도 ‘공부’하겠다면서 종이나 수첩에 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아버지가 보기로는 그림이지만, 아이로서는 글이다. 아이는 아버지가 쓰는 글을 흉내내어 아버지가 깨알처럼 쓰는 글을 베끼는 그림을 그린다.

 나는 내 머리를 그닥 못 믿는다. 잘 새겨들었다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엉뚱하게 떠올리거나 잊는 일이 잦다 보니, 반드시 수첩에 쪽글을 남겨야겠다고 느낀다. 여기저기 마음쓸 곳이 많으니까 쪽글을 남기지 않으면 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사진을 찍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쪽글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웬만하면 쪽글을 쓰지만, 쪽글조차 끄적일 겨를이 없으면 부리나케 사진기 단추를 누른다. 또는, 나 혼자 즐기기 너무 아쉽구나 싶은 아름다운 모습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기에 사진기 단추를 누른다. 나 혼자 바라보기에 몹시 슬픈 모습을 동무와 함께 나누고자 사진기 단추를 누른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쪽글을 쓴다. 내 삶을 하루하루 다 다르게 맞이하며 다 다르게 마감하는 즐거움을 듬뿍 맛보고 싶어서 쪽글을 쓴다. 그날그날 이야기를 그날그날 적바림한다. 그날그날 새로워진 내 넋을 곱씹고, 그날그날 거듭나려는 내 몸을 되새긴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며 마음이나 몸을 쉰다고 할 텐데, 나는 손목아지와 손가락이 저리도록 재빨리 쪽글을 휘갈기면서 마음과 몸을 쉰다. (4344.3.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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