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책읽기
손으로 아이 이마를 쓰다듬으면 아이 몸이 어떠한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손으로 옆지기 어깨나 허리나 다리를 주무르면 옆지기 몸이 어떠한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손으로 흙을 쥐어 사르르 떨어뜨리면 흙이 어떠한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손으로 나뭇잎이나 풀잎을 쥐어 스르르 어루만지면 잎사귀가 어떠한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눈으로 보아도 척 알 수 있겠지요. 누군가는 눈으로 보기 앞서 살갗으로 다가오는 느낌으로 훤히 알 수 있겠지요. 누군가는 책으로 읽은 앎조각에 기대어 안다 할 수 있겠지요.
글 한 줄이나 책 한 권에 너른 사랑을 담았는지 얕은 돈셈이 스몄는지는, 책을 가만히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고 슥 훑으면서도 알 수 있으며 껍데기만 보아도 훤히 꿰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알며 나누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누구랑 이웃하는 사람인가요.
내 손길은 무엇을 느끼려 하고, 나는 어떻게 느낀 이야기를 내 앎조각으로 받아들이려 하며,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픈 목숨인지요.
손으로 책을 읽습니다. 눈으로 책을 읽습니다. 마음으로 책을 읽습니다. 몸으로 책을 읽습니다. 귀로 책을 읽습니다. 발가락으로 책을 읽습니다. 머리로 책을 읽습니다. 나는 이렇게도 책을 읽고 저렇게도 책을 읽습니다. 책 하나를 여러 가지로 읽습니다. 책 하나를 오롯이 읽자면 내 삶을 예쁘게 바쳐야 합니다. (4344.3.15.불.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