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바늘과 좋은 책
바느질이나 뜨개질에 익숙한 사람은 바늘이 안 좋아도 잘 쓴다는 이야기를 옆지기가 들려준다. 그러고 보면, 손이 안 보인다 할 만큼 잽싸게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는 분을 곁에서 지켜보면 이분들이 꼭 좋은 바늘을 쓰지만은 않는다. 그저 당신한테 익숙하며 길이 잘 든 바늘을 쓴다. 좋다는 바늘이 익숙하면 좋다는 바늘을 쓰고, 안 좋다는 값싼 바늘이 익숙하면 안 좋다는 값싼 바늘로 옷을 뜬다.
사람들 누구나 ‘좋다고 하는 책’이나 ‘훌륭하다 여기는 책’이나 ‘아름답다 손꼽는 책’을 읽으면 참으로 즐거울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만히 따지면, 제아무리 좋다고 하는 책이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책이나 아름답다고 손꼽는 책을 잔뜩 장만해서 읽는다 할지라도, 조금도 좋은 삶을 일구지 못하거나 조금도 훌륭하게 살아가지 못하거나 하나도 안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좋은 책을 읽으면서도 좋은 넋을 북돋우지 못할 뿐 아니라 좋은 말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훌륭하다는 책을 참 많이 읽었다지만 훌륭한 얼이나 훌륭한 글을 길어올리는 사람이 퍽 드물다. 아름답다는 책을 잘 안다지만 막상 살림살이를 아름다이 일구지 못하는 사람은 참말 얼마나 많은가.
바늘이 좋다면 바느질을 더 잘할 수 있다. 좋은 책을 곁에 두면서 살아가면 더 나은 생각과 마음을 살찌울 수 있다. 그렇지만, 썩 안 좋은 바늘로도 내 아이와 살붙이를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 옷을 뜰 수 있다. 책 한 권 읽지 못하는 살림이라 하지만, 착한 사랑과 고운 믿음으로 이웃과 동무하고 어여삐 어깨동무하거나 품앗이하는 사람이 많다. 좋은 바늘, 좋은 집, 좋은 자동차, 좋은 가방끈, 좋은 옷, 좋은 책은 좋은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라든지 바른길이 될 수 있는가. (4344.3.14.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