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껴 아껴 책읽기


 오늘날은 읽을 만한 책이 무척 많습니다. 한 해가 지나면 읽을 만한 책은 더 늘어날 테고, 열 해가 지나면 읽을 만한 책은 훨씬 늘 테지요. 앞으로 백 해가 지난다면, 백 해 뒤를 살아갈 사람들은 읽을 만한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거의 짓눌리다시피 하지 않으랴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백 해쯤 뒤에는 오늘날 널리 읽히는 좋은 책들 가운데 꽤 많은 책들이 사라지거나 잊히겠지요. 묵은 책이 차츰 스러져야 새로운 책이 사랑받을 수 있으니까요. 늙은 사람은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듯, 늙은 책 또한 조용히 도서관이나 헌책방 책시렁에 남으면서 몇몇 사람한테 다시금 읽히거나 새로운 책한테 거름밭 구실을 하겠지요.

 가만히 돌아보면 내 어린 나날은 나를 낳은 어버이들이 보낸 어린 날보다 읽을 책이 훨씬 많습니다. 나를 낳은 어버이가 보낸 어린 나날 내 어버이를 낳아 돌본 할머니와 할아버지 때에는 읽을 책이 훨씬 적었겠지요. 차츰 새로운 책이 늘고 차츰 슬기로운 넋이 북돋우며 차츰 아름다운 책마을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찾아 읽는 사람이 나날이 줄어든다 하지만, 새롭게 태어나는 좋은 책이 꾸준히 늘어나는 만큼 사람들은 더 너른 책을 더 두루 찾으며 사랑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오늘날보다 읽을거리가 훨씬 적던 내 어린 날, 만화책 하나를 빌려서 읽든 동화책 하나를 얻어서 읽든, 한 번 읽고 치운 적은 없습니다.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씩 잇달아 읽었습니다. 보고 보며 또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나한테 “그 책 읽었으면서 또 읽니?” 하고 물었습니다. “같은 책을 또 보는데 재미있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으니까 또 보고 다시 봅니다. 즐겁기에 거듭 읽고 새로 읽습니다. 세 번째 볼 때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읽을 때하고는 다른 느낌입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읽을 때에는 처음 읽을 때하고 사뭇 다른 맛입니다. 읽을수록 새삼스레 스며들고, 볼수록 남달리 빠져듭니다.

 좋은 읽을거리가 많으면 새로운 좋은 읽을거리를 찾아 끝없이 새로운 책을 읽을 텐데, 좋은 읽을거리가 몇 없어도 이 몇 가지 책을 자꾸자꾸 읽고 새기면서 내 마음밭을 일굽니다. 책 하나가 있어 백 번쯤 읽어도 좋고, 책 둘이 있어 갈마들어 쉰 번씩 읽어도 좋습니다. 책을 읽으며 줄어드는 쪽수를 살피어 아껴 아껴 읽습니다. 드디어 다 읽으면,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줄어드는 쪽수를 새삼스레 다시 느낍니다. (4344.2.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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