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나를 되풀이 읽기


 어린 날 만화책을 빌려서 읽을 때면 늘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 거듭 읽었습니다. 천천히 읽으면서도 ‘앞으로 읽을 쪽’이 차츰 줄어드니까 아쉬워 아주 더디게 읽지만, 이렇게 더디 읽으면서도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 거듭 읽습니다. 얼른 읽자는 마음이 아니라 금세 술술 읽히면서 제발 앞으로 더 남기를 하고 빌었습니다. 마음으로 깊이 아로새기는 만화를 읽을 때에는 ‘부피가 너무 적다’고 느낍니다.

 어느 책을 읽든 예나 이제나 똑같이 생각합니다. ‘앞으로 읽을 쪽’이 얼마나 남았나를 헤아릴 때에 두근두근 조마조마 설레면서 아쉬운 책은 여러 차례 되읽는 책입니다. ‘앞으로 읽을 쪽’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느끼면서 마지막 쪽을 덮는 책은 으레 다시 읽지 않는 책입니다.

 줄거리를 외자고 읽는 책이 아니기에, 줄거리를 간추린다든지 ‘책에 나오는 사람이나 땅이나 물건에 붙는 이름을 줄줄 꿰’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아로새기고픈 책을 읽으니까, ‘책에 나오는 사람이나 땅이나 물건마다 깃든 넋과 사랑이 어떠한가를 가만히 생각’하면서 두고두고 곱씹습니다.

 책을 차근차근 처음부터 끝까지 읽든, 군데군데 뽑아 가며 읽든, 소리내어 찬찬히 읽든, 내 마음으로 스며드는 사랑스러운 책이라면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 되풀이해서 읽겠지요. 책마을 일꾼이 땀을 쏟아 내놓는 책은 책마을 일꾼부터 스스로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 되읽는 책입니다. 그저 많이 팔아 돈을 벌자며 내놓는 책일지라도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을 읽고, 참으로 좋다고 느껴서 사람들한테 두루 알리고프니까 내놓는 책 또한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을 읽습니다.

 그러면, 책마을 일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책마을 일꾼이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을 거듭 읽으며 내놓는 책을 사서 읽을 사람들이 당신처럼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 거듭 읽어 주기를 바랄까요, 그냥 한 번 슥 읽기를 바랄까요. 한 번 읽고 그칠 만한 책을 만드는가요, 숱하게 되읽으며 아낄 만한 책을 만드는가요. 많이 팔리지 않고서야 일하는 보람을 못 느끼는 책을 만드는가요, 알뜰히 읽히며 사랑받을 책을 만드는가요.

 아마 책마을 역사에는 ‘숫자로 쳐서 많이 팔리는 책’이 적바림되겠지요. ‘숫자로 쳐서 적게 팔리는 책’이 책마을 역사에 적바림되는 일이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숫자로 쳐서 많이 팔리는 책’이 우리 가슴이나 마음밭에 알뜰살뜰 스며들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꼭 ‘숫자로 쳐서 적게 팔리는 책’이 우리 가슴이나 마음밭에 깊이 아로새겨지지는 않을 테지만, 책을 말하고 책마을을 말하며 책삶을 말할 때에는 팔림새 아닌 읽힘새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듦새에 앞서 책을 마주하는 내 매무새를 살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두고두고 되읽다가는 우리 아이한테 물려주어 우리 아이도 거듭 읽을 만한 책을 우리 가난한 살림돈을 바쳐서 장만하고 싶습니다. (4344.2.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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