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2
― 사진책 함께 읽기


 책이든 먹을거리이든 뜨개바늘이든 자전거이든 ‘함께 사기(공동구매)’를 하는 분들이 무척 많습니다. 여럿이 한꺼번에 장만한다 하면 조금 더 값싸게 살 수 있다고 해서 ‘함께 사기’를 합니다.

 사진책이 너무 비싸다며, 사진책 하나 장만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작고 값싸게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사서 읽도록 해 준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작고 값싸게 만든 사진책조차 사진을 찍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장만해 주지 않기 일쑤입니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사진책은 몹시 안 팔리는 책이다 보니, 사진책 만들어 내놓는 데에 돈이 많이 들고, 이렇게 많이 드는 돈 걱정을 하는 한국에서는 사진책이 참 비싼 책이라고 느낄밖에 없습니다.

 꼬인 실타래를 누군가는 풀어야 할 텐데, 좀처럼 풀릴 낌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더 수수하며 더 알차며 더 옹근 사진책을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조금 비싸거나 조금 짐스럽거나 조금 벅차더라도 푼푼이 돈을 그러모아 한 달에 한 권쯤 사진책을 장만하는 손길을 만나기 힘듭니다.

 꽤 값나가는 사진책이라 하더라도 한 권에 5∼7만 원입니다. 날마다 이천 원씩 모으면 다달이 한 권쯤 장만할 수 있습니다. 나라밖 좋은 사진책 가운데에는 만 원을 살짝 넘는 책부터 삼사만 원짜리 책이 꽤 많습니다. 이제는 인터넷책방에서 나라밖 책 주문을 잘 받아 주니까, 인터넷책방에서 이런저런 나라밖 사진쟁이 이름을 살피면서 한 권씩 받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사진쟁이 백 사람 사진책을 하루아침에 사들이려 하면 살림이 무너집니다. 사진쟁이 백 사람 사진책을 한꺼번에 장만한다 해 보았자, 이 사진책을 하나하나 살피거나 받아들인다 할 수 없습니다.

 없는 살림에도 더욱 힘을 쏟아 다달이 서너 권이나 대여섯 권씩 사진책을 장만할 수 있겠지요. 없는 살림이니까 한 달에 한 권씩만 장만할 수 있겠지요. 있는 살림이라면 날마다 한 권씩 장만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사서 읽는다고 ‘사진 읽는 눈’이 훨씬 훌륭해지지 않으며, 더 적게 사서 읽기에 ‘사진 읽는 마음’이 더 얕지 않습니다. 사진책 한 권을 읽더라도 내 마음가짐과 매무새가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살림이 넉넉하다면 다달이 여러 권을 사서 여러 권을 가만히 견주면서 읽습니다. 살림이 팍팍하다면 다달이 꼭 한 권만 사서 이 한 권을 한 달 내내 구석구석 샅샅이 살피면서 서른 번이고 삼백 번이고 거듭거듭 읽습니다.

 여러 가지 사진책을 나란히 놓고 견주어 읽을 때에는 이렇게 읽는 대로 ‘사진 읽는 눈썰미’를 키웁니다. 한 가지 사진책을 오래도록 살피며 파헤칠 때에는 이렇게 읽는 대로 ‘사진 읽는 마음결’을 가다듬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을 같은 사진기로 찍어도 저마다 다 다른 사진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같은 사진책을 같은 자리에서 읽어도 사람마다 다 다른 사진넋을 품겠지요.

 나는 내 나름대로 좋은 알맹이를 얻으면 됩니다. 나는 내 깜냥껏 사랑스러운 열매를 맺으면 됩니다. 내 나름대로 붙잡은 사진감에 따라 사진책을 만들고 싶은 꿈은 ‘사진책 백 권을 만들어’ 이룰 수 있는 한편, ‘사진책 한 권을 만들어’ 이룰 수 있습니다.

 사진책을 백 권 만들어 내야 훌륭하다 할 수 없습니다. 사진책을 한 권 만들었기에 어설프다 할 수 없어요.

 사진책을 천 권이나 만 권 장만하여 읽었기에 더 깊거나 어여쁜 사진눈을 북돋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진책을 백 권이나 다문 열 권을 읽었으니까 더 어수룩하거나 못난 사진눈으로 나뒹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목숨이나 자연이나 풍경이나 물건과 마주하는 내 삶을 찍습니다. 사진책을 읽을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언제나 내 삶에 따라 사진을 찍고 사진을 읽습니다. 내 삶을 찍으며 내 삶을 읽습니다. 내가 오늘 선 자리를 돌아보고, 내가 어제 길은 길을 되씹으며,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꿈꿉니다.

 요즈막은 사진찍기에 크게 마음을 쏟아 신나게 사진을 즐기다가, 나중에 하루이틀 흘러 사진이 재미없다고 느끼면 사진기를 팔아치울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샀다가 파는 사람이 꽤 많아요. 인터넷을 뒤지면 새 사진기를 팔겠다고 내놓는 수많은 사람들 글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마, 온누리에 손꼽힌다는 분들 아름다운 사진책을 샀어도 이 사진책을 ‘누구 사 갈 사람 없어요?’ 하며 내놓는 분이 퍽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 번 헤아려 봅니다. 사진을 좋아하려다가 사진하고 멀어진다고 해서 나쁜 일이 되지 않습니다. 좋다는 사진책을 애써 장만했다가 팔려고 내놓는 일은 슬픈 일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좋다는 사진책을 누군가 애써 장만했’기 때문에, 이 사진책을 헌책방에 내놓든 인터넷장터에 내놓든, 우리 나라에 ‘좋다는 사진책 한 권’이 더 돌고 돌 수 있습니다. 새책으로 사서 헌책으로 내놓아 주는 사진책인 만큼, 두 번째로 이 사진책을 사서 읽을 사람은 조금 값싸게 사서 읽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세 번째나 네 번째로 사서 읽을 사람이라면 다문 100원이나 500원이라도 조금 더 값싸게 사서 읽을 수 있겠지요.

 누군가 내놓을 사진책을 조금 더 값싸게 사들이자며 기다리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이렇게 기다리더라도 나부터 ‘내가 사진책 한 권 한 달에 한 권쯤’ 사서 읽으며, 이 사진책을 스스럼없이 헌책방에 슬쩍 내놓을 수 있는 매무새가 되어 본다면 퍽 즐거우며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4344.2.24.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