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림자


 등불 하나 없는 고요한 멧길을 아이 손을 잡고 옆지기와 함께 내려옵니다. 보름달이 아니요 반달조차 아닌 날씬한 초승달인데, 이 초승달은 우리들 머리 위쪽에서 밝은 빛을 뿌리며 그림자를 베풀어 줍니다. 올망졸망 멧길을 걸어 내려오는 시골집 세 식구는 달그림자를 밟으며 노래노래 부릅니다. 달그림자 없이 살아가야 하는 서울사람들이 딱하다 싶지만, 서울사람한테는 달그림자가 없어도 돈그림자가 있겠지요. 달그림자 어리는 책을 알아보거나 느끼지 못할 테지만, 돈을 얻거나 이름을 드날리는 처세책과 경영책을 많이 만나거나 즐겁게 읽을 테지요. 도시사람은 달그림자 없이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테니까요. 도시에 깃든 회사는 달그림자로 굴러가지 않을 테니까요. 도시에서 펴내어 도시에서 읽는 신문은 달그림자 이야기를 다루지 않을 테니까요. 아파트에는 달그림자가 나타날 수 없을 테니까요. (4344.2.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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