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와 책읽기


 한국땅에서 남자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군대를 가야 한다. 군대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남자는 군대를 안 갈 수 없는 나라 한국이다. 군대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재주를 배우거나 길들면서 ‘살인 병기가 되는 훈련’을 받는 곳인데, 평화를 사랑하든 아끼든 좋아하든 군대에 안 갈 길이란 없다. 그토록 끔찍한 군대를 무시무시하게 키워 온누리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면서 돈과 권력을 움켜쥐는 미국조차 군대는 ‘남자가 반드시 억지로 끌려가야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막상 ‘고요한 아침 나라’라는 허울을 내세우는 이 나라에서는 푸르디푸른 넋이 총칼 훈련에 여러 해 길들어야 하는 곳을 나와야 ‘한 남자가 된다’느니 ‘한 사람이 된다’느니 하는 말을 떠벌이기까지 한다.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써서 군대를 가지 않는 사람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다.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나쁘다. 군대로 끌려가야 하는 돈없고 이름없으며 힘없는 사람들한테 아주 크나크게 잘못을 저지르는 셈이다.

 그런데,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있는 사람은 왜 군대에 안 갈까?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없는 사람은 왜 군대에 끌려갈까?

 왜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군대에 안 가려 하는가. 군대에서 보내는 나날이 그네들한테 도움이 된다면 군대에 안 갈 까닭이 있는가. 군대를 다녀와서 ‘한 남자가 되’고 ‘한 사람이 된’다면 군대에 안 갈 까닭이 있는가.

 나쁜 꼼수를 써서 군대 그물을 벗어나는 이들은 몹시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저희한테 있는 돈과 이름과 힘을 써서 ‘이 나라 모든 사람이 군대라는 곳에 끌려가지 않도록’ 애써야 옳다. 아니, 이 나라 이 땅에서 군대를 없애야 마땅하다.

 한입으로는 ‘나라 지키기’를 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정작 스스로 군대를 안 가거나 요리조리 빠져나오려고 한다면, 이는 얼마나 두동진 모습인가. 이들은 스스로 알게 모르게 ‘군대 = 나라 지키기’가 아닌 줄 아니까 군대에 안 간다. ‘군대 = 나라 지키기’가 아니라 ‘군대 = 권력 지키기’이다. ‘군대 = 권력 지키기’이기 때문에, 있는 사람들은 군대에 가지 않으려 하면서, 없는 사람들은 군대에 끌려가도록 몰아붙이고, 저희들 있는 사람 권력을 지키도록 길들이려 한다. 없는 사람들은 군대에 끌려가서 길들며 주눅들고 짓눌리면서 ‘군대 = 나라 지키기’라는 거짓말을 달달 외우고야 만다.

 군대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 뿐 아니라 살인무기로 만든다. 군대에서는 ‘사람이 사람다이 살면서 사람됨을 갖추도록’ 이끄는 책을 읽히지 않는다. 군대라는 곳은 ‘사람이 사람다이 살도록 이끄는 아름다운 책’을 모조리 불온도서로 삼아야 한다. 군대를 지켜서 권력을 지키려 하는 이들은 ‘사람들이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마음을 건사하도록 하는 책’은 온통 ‘나쁜 빨갱이 책’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불태우려 할밖에 없다. 총알받이로 써먹어야 할 군인들이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면, 군대 밑뿌리를 알아채면서 캐내기 때문에, 군대는 젊은 남자가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놓아 주지 않는다. 군대는, 군인으로 끌려가는 젊은 사내들이 ‘젊은 기운과 넋’을 엉뚱한 데에 쏟아부으면서 ‘여자를 성욕 노리개’로 삼는 틀에 가두려 한다.

 군대는 권력 지키기를 하면서 가부장제를 튼튼히 닦아 세운다. 군대를 다녀왔대서 가산점을 받으려 하는 남자들은 아주 불쌍하다. 군대 때문에 삶과 넋과 말이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어줍잖은 가산점이란 무슨 값을 하는가. 잃어버린 나날은 돌이킬 수 없다. 잃은 젊음과 아름다움은 돈 몇 푼으로 갚을 수 없다. 회사나 공공기관에 들어갈 때에 ‘군 가산점’을 매기는 일이란 아주 어처구니없다. 그러나 회사나 공공기관은 사람이 사람다이 일하는 곳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더 빨리 벌어들이려 하는 곳이기 때문에 군 가산점을 줄밖에 없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재주를 길들이는 곳을 다녀왔는데 군 가산점을 준다니, 그야말로 터무니없다. 가산점이란 아주 부질없으나, 굳이 가산점을 주어야 한다면 ‘아이를 낳은 어머니’한테 주어야 하고, ‘살림을 꾸린 사람’한테 주어야 하며, ‘내 둘레 이웃하고 사랑과 믿음을 나눈 사람’한테 주어야 한다. 자격증이 있대서 가산점을 줄 까닭이 없다. 자격증이란 기술 증명서이지, 삶을 가꾸는 슬기가 아니다. 그렇지만, 회사나 공공기관은 삶을 가꾸는 슬기를 빛내어 아름다운 터전을 보듬는 일터가 아니기 때문에 군복무와 자격증을 높이 살밖에 없다. 이는 정치밭이나 경제밭에서 똑같이 여기는 대목이요, 공직자나 정치꾼들한테 ‘군대를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를 따져 묻는 바보스러운 물음이나 살피도록 내몰고 만다.

 한국 남자는 군대에 끌려가기 때문에 책을 못 읽는다. 한국 남자는 군대에서 살인무기가 되도록 길드는 나머지 책하고 등을 돌린다. 한국 남자는 군대라는 틀거리에 몸을 맞추는 버릇을 털지 못하면서 회사원이 되거나 남편이 되기 때문에 책과 깊이 사귀는 사랑을 깨우치지 못한다.

 군대가 있는 나라에서는 책이 책이 되기 어렵다. 군대를 북돋우는 나라에서는 책을 책다이 일구기 힘들다. 군대에 얽매이는 나라에서는 책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빛줄기를 누리지 못한다. (4344.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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