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38] 물짜기
설을 맞이해서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랑 할아버지 사는 집으로 찾아갑니다. 집안일을 얼추 마무리짓고 가려 했으나, 이러다가는 너무 늦어질까 싶어 빨래감은 그냥 들고 가서 눈치껏 쉴 때에 하자고 생각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는 물이 세 차례 얼어 콘크리트까지 깨서 물을 녹였답니다. 물이 다시 얼지 않도록 씻는방에 꽤 세게 물을 틀어놓으셨기에 이 물로 손빨래를 할까 생각하는데, “그냥 세탁기 돌리지?” 하고 말씀하셔서 빨래하는 기계를 써 보기로 합니다. 빨래하는 기계에는 ‘세탁·헹굼·탈수……’ 같은 말이 적힙니다. 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구나. 빨래하는 빨래틀이나 빨래기계나 빨래통이 아닌, 세탁하는 세탁기니까 세탁이라고 적겠구나.’ 저녁나절, 아이가 입던 겉옷도 빨래하자고 생각하며, 모두들 쉬며 텔레비전을 보는 때에 신나게 빨아서 널어 놓습니다. 어머니가 보시고는 “탈수라도 하지?” 하십니다. “그럴까요? 물이라도 짤까요?” 씻는방에서 손으로 더 짠 다음 빨래통에 넣습니다. ‘탈수’ 단추를 누릅니다. 스무 해 훨씬 앞서는 집에 짤순이가 있었기에 으레 ‘물짜기’를 말했지만, 이제 ‘세탁기’ ‘탈수’ 단추가 있는 만큼, 어머니 말씨는 ‘탈수’로 굳어집니다. (4344.2.3.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