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금 깎기


 능금을 잘 못 깎았습니다. 참외이든 감자이든 잘 못 깎았습니다. 그러나 껍질째 먹기를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아직 껍질을 못 씹습니다. 아이한테 제 아버지가 하듯이 껍질째 먹으라 할 수 없습니다. 껍질을 살살 벗겨 주어야 합니다. 아이 어머니가 몸이 많이 힘들고 마음이 크게 아픈 사람이니까, 아이가 능금을 먹고 싶어 한다면 아이 아버지가 깎아 주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능금알을 깎아 준 지 서른두 달쯤 됩니다. 갓난쟁이일 때에도 능금을 먹지는 않았으나, 아무튼 아이한테 이것저것 깎아서 먹인 지 서른두 달째입니다. 서른두 달째 접어든 애 아버지 ‘능금 깎기’는 썩 예쁘지는 않으나, 지난날 혼자 살던 무렵처럼 어설프거나 엉터리이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서른두 달이 더 지나고, 또 서른두 해가 더 지나도록 살아남을 수 있다면, 내 능금 깎기는 어떠한 매무새일까 가만히 곱씹습니다. 이제껏 쉰 해 예순 해 일흔 해를 능금 깎기로 살아온 어머님들과 할머님들 손매무새와 손길과 손결과 손무늬는 어떠한 이야기가 깃든 나날일는지 곰곰이 되돌아봅니다. (4344.2.1.불.ㅎㄲㅅㄱ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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