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하는 책읽기


 글을 쓰는 사람 가운데 ‘분석하면서’ 쓰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모저모 따지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아예 없지 않겠지요. 생각없는 글이란 쓸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작품분석’이나 ‘창작분석’이란 없습니다. 글읽기와 글쓰기가 있습니다. 글이란 글이지 작품이 아니요, 사진은 사진일 뿐 작품이 아닙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치고 작품을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름난 노래이건 대단한 노래이건 따지지 않습니다. 내 가슴에 사무치면서 혀로 감돌기에 부르는 노래입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글쓴이 이름을 따질 까닭이 없습니다. 저처럼 우리 말글 다듬기 일을 하는 사람이야, 책을 읽으면서 이모저모 잘못 쓴 대목을 짚을 수 있으나, 저 또한 책을 읽을 때에는 그저 책을 읽습니다. ‘문장분석’ 따위를 할 수 없고, 할 까닭이 없으며, 이런 일을 하면 하루하루 아깝습니다.

 흔히들 ‘지면분석’을 하고 ‘지면연구’를 합니다. 사람들이 더욱 잘 들여다보도록 편집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편집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러나, 편집할 글이 있어야 편집을 합니다. 편집할 글이 없이 편집을 할 수 없습니다.

 편집이란 글고치기가 아닙니다. 편집이란 글쓴이 넋을 매만지는 일이 아닙니다. 서툰 글이든 돋보이는 글이든, 그저 이 글마다 어떠한 삶이 깃들었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편집입니다. 이 글이 실린 책을 읽을 때에 눈이 아프지 않도록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한결 마음이 느긋하거나 사랑스럽도록 이끄는 편집입니다. 눈부시게 해야 할 편집이 아니고, 눈부셔야 할 편집이 아닙니다. 편집에 앞서 글부터, 눈부셔야 할 글이 아니요, 눈부실 까닭이 없는 글입니다. 삶을 담는 글이고, 삶을 엮는 편집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살아가는 집은 집입니다. 디자인 건축품이 아닙니다. 디자인 작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 건축 작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살림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살림집이면서 예쁘장하다면 좋을 수 있겠지요. 살림집이면서 예쁘장할 때에는 좋다 할 뿐, 더도 덜도 아닙니다. 살림집은 살림집답게 일구어야 해요.

 춤은 춤처럼 즐기는 춤입니다. 연극은 연극대로 즐기는 연극입니다. 글은 글맛이 나도록 쓰며 읽는 글입니다.

 시를 분석하며 읽을 수 없습니다. 그림책을 낱낱이 파헤치거나 따지면서 읽힐 수 없습니다. 만화책을 넘기면서 그림결이 몹시 엉성한 작품들은 퍽 껄끄럽기는 하지만, 껄끄러운 대로 줄거리와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처음부터 만화쟁이 한 사람 그림결이 빈틈없이 마무리될 수 없는 노릇이니까, 이런 대목은 술렁술렁 지나치려 합니다. 그런데, 참말 좋은 만화를 사랑스레 그리는 이들은 새내기 때이든 익숙내기 때이든 그림결이 아주 따사롭습니다. 투박할 때에는 투박한 대로 따사롭고, 보드라울 때에는 보드라운 대로 따사롭더군요.

 젊을 때에는 한껏 거칠거나 윽박지르듯이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늙을 때에는 한결 차분하면서 쓰다듬듯이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어느 때 어느 글이 더 훌륭하거나 낫다 여길 수 없습니다. 젊은이 글은 젊은이 글대로 좋고, 늙은이 글은 늙은이 글대로 좋습니다. 늙은이이면서 젊은이처럼 살아가면 이 글은 이 글대로 좋고, 젊은이이면서 애늙은이가 다 되었다면 애늙은이 글은 또 이러한 결대로 좋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이기에, 다 다른 글을 다 다른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글은 짜거나 재거나 꿰어맞출 수 없습니다. 글은 오로지 즐길 뿐이요, 읽을 뿐입니다. 글은 오직 쓸 뿐이요, 나눌 뿐입니다. (4344.2.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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