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과 책읽기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지난 2007년에 사서 읽다가 퍽 오랫동안 밀쳐 두었다. 놀랍게 썼다 싶은 논문이지만, 이 책은 책이 아니라 논문이기 때문에 ‘책으로 읽는 맛’이 없다. 아파트를 파헤치거나 들여다보는 눈썰미를 찾는 대목에서는 훌륭하다 여길 만하다. 그러나 논문은 ‘보고·분석·정리’에서 그칠 뿐, 논문이 다루는 이야기를 사람들 삶에 어떻게 녹아들도록 하느냐를 짚거나 살피지 않는다. ‘사례조사·통계·비교’ 또한 훌륭하다 할 만하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길찾기에서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네 해 만에 다시 들추어 본다. “대단지 아파트로 대표되는 한국의 주택 문제에 대해 대다수 건축가들과 지식인들의 입장은 모호함을 그 특징으로 한다(111쪽).”는 대목을 읽는다. 건축가들과 지식인들이 아파트라는 곳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밝히는 글이란 거의 없거나 흐리멍덩하다. 프랑스사람 발레리 줄레조 님 글이 아니더라도, 한국땅 건축가나 지식인 가운데 아파트에서 살지 않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거의 다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더구나, 건축가나 지식인이라는 이들이 쓴 글을 읽을 사람 또한 으레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글쟁이(작가)와 즐김이(독자) 모두 아파트사람이라 할 수 있는 한국땅이다.

 가만히 살피면, 건축가나 지식인 스스로 아파트에서 살아갈 뿐 아니라, ‘아파트 굴리기’를 흔히 하는 데다가 ‘돈불리기’를 한다. 이들 삶이 이러하니, 이들 건축가가 건축을 한다든지 지식인이 지식을 펼친다든지 할는지 모르나, 막상 스스로 또아리를 튼 삶터를 놓고 비평을 하거나 논평을 할 일이란 없다. 아파트에서 살아가며 “아파트는 불구덩이야!” 하고 외치는 글쟁이가 어디에 있는가. 밤하늘 별빛이 아닌 밤도시 불빛을 우러러 마지 않는 도시사람 아닌가. 아파트 높은층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아름답다고 여기는 도시사람 아닌가. 건축가라든지 지식인이라든지 하나같이 시골사람 아닌 도시사람인데, 이들 입에서 아파트를 다루는 글이 나오기를 바랄 수 없다. 더구나, 그림쟁이가 아파트를 멋스레 그리는 일이란 없고, 사진쟁이가 아파트를 예쁘게 찍는 일 또한 없다. 제 삶터를 그림감이나 사진감으로 삼지 않는다. 아주 마땅히, 건축가나 지식인은 아파트를 글감으로 삼지 않는다. 아파트는 어떤 지식인한테도 이야기감이 되지 못한다.

 도시에서 동네 골목 조그마한 살림집을 얻거나 빌려 가난하고 수수하게 살아갈 때에 비로소 ‘대규모 재개발’이라든지 ‘4대강 막삽질’이라든지 ‘올림픽과 월드컵 유치’처럼 막나가는 ‘돈에 미친 경제정책’을 올바로 바라보며 올바로 말할 수 있다. 스스로 가난하게 살아갈 마음이 없고, 스스로 가난을 모르면서, 스스로 가난하고는 멀리 떨어진 채 부자요 권력자로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건축가나 지식인은 입으로는 ‘서민·대중·인민·시민·민중·민초·백성’ 같은 말마디를 읊을는지 모르나, 건축가나 지식인 스스로 서민이나 백성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 살아가지 않으면서 말할 수 없고, 말하기 앞서 알지 못하며, 알기 앞서 깨닫거나 껴안지 못한다.

 누구나 저 스스로 선 자리에 맞게 글을 쓴다. 누구나 저 스스로 살아가는 자리에 따라 책을 읽는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으니까 처세책을 보고, 지식을 더 갖추고 싶으니까 지식책을 본다. 더군다나 아름다운 어린이책이나 문학책마저 ‘독후감 실적 쌓기’로 여기며 읽는다. 아이들은 대학입시 때문에 문학책을 외우며, 어른들은 심심풀이로 문학책을 옆구리에 낀다. 아름다운 삶을 즐기면서 밝히는 문학책을 손에 쥐면서도 문학책에 깃든 아름다운 삶을 건드리거나 바라보거나 어깨동무하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저마다 저 스스로 선 자리에서 책을 느끼거나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마음이 착한 다음에 책을 쥐어야 한다. 먼저 참다이 꾸리는 삶을 사랑하고 나서야 책을 들어야 한다. 먼저 곱고 바른 말을 나누는 매무새를 가다듬은 뒤에 책을 마주해야 한다. 껍데기가 그럴싸한 삶이 아니라, 속살이 아름다운 삶일 때라야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면서 눈물과 웃음으로 맞아들인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동안 책읽기는 부질없다. (4344.1.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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