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라 아야코, 三浦綾子


 어느 헌책방을 찾아가든 ‘미우라 아야코’나 ‘三浦綾子’ 산문책과 소설책을 어렵지 않게 한두 권씩 만납니다. 똑같은 책을 만나기도 하고, 예전에 읽은 책을 만나기도 하며, 오늘 읽는 책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 헌책방 저 헌책방 두루 찾아다니다 보면, ‘미우라 아야코’나 ‘三浦綾子’ 이름이 적힌 온갖 책을 끝없이 만납니다. 똑같은 책인데 이름은 달리 붙으며 나오기도 하고, 같은 책이면서 같은 이름이 붙으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여러 책에 실린 글을 뽑아 낸 책이 있으며, 예전 책을 고스란히 되살린 책이 있습니다.

 어디에선가 문득 들은 이야기로, 한국에 가장 많이 옮겨진 일본문학은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미우라 아야코 님 전집은 나오지 않을 뿐더러, 미우라 아야코 님 책 목록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어쩌면, 미우라 아야코 님이 쓴 책을 한눈에 알기 쉽도록 갈무리하는 사람부터 거의 없다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을 하나하나 그러모읍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 책에서 본 듯한 이야기가 있고, 저 책을 읽는 동안 이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다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이든 저 책이든 그냥 다 읽습니다. 비슷해도 괜찮고, 닮았어도 나쁘지 않으며, 똑같은 글을 다른 책에서 거듭 읽을지라도 즐겁습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 도서관을 꾸리던 지난해까지, 인천 화평동에서 수채그림을 그리는 여든일곱 살 박정희 할머님한테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이랑 소노 아야코 님 책을 일본판으로 찾아서 사 드렸습니다.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은 나이가 무척 많기에 눈이 몹시 나쁜 나머지 이제는 도무지 책을 못 읽겠다고 생각하셨는데, 어느 날 어찌저찌 안경을 바꾸고 보니 아주 맑고 또렷하게 잘 보여서 ‘온누리를 다시 얻은 듯한 기쁨’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안경을 바꾸면 될 일이었으나, 그저 당신 눈이 너무 늙어 책은 접어야겠다고 여기셨답니다. 그래, 새눈을 찾은 기쁨을 누리고자, 당신이 늘그막에 마지막으로 가슴으로 껴안고픈 책으로 미우라 아야코 님과 소노 아야코 님 두 분을 들었으며, 어설픈 한국말 번역이 아닌, 처음 그대로 적바림한 옳고 바르며 정갈한 일본말 책으로 읽고 싶어 하셨습니다.

 한국땅 헌책방에는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이 일본판으로 꽤 많이 떠돕니다. 조금만 눈을 밝히면 한 달 동안 여러 헌책방을 쏘다니면서 백 가지 책쯤 장만할 수 있지 않으랴 생각합니다. 백 가지 책은 다 다른 책일 수 있으나, 같은 책인데 출판사나 판본이 다를 수 있어요. 이러구러 눈을 밝히면 볼 수 있는 책이요, 눈을 밝히면서 읽을 만한 책입니다.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이 일본책으로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을 읽는 마음을 알기에, 저도 일본책으로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을 읽고프다고 꿈을 꿉니다. 그러나 애써 일본말을 새로 익혀 읽을 겨를을 내지는 않습니다. 집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밥벌이를 하는 가운데 얼마든지 일본말을 알뜰히 익힐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로서는 새로 일본말을 배우고자 내 삶을 들이지 않습니다. 새로 일본말을 배우기보다는 아이를 돌보고 집일을 건사하고 싶습니다. 박정희 할머님 또한 처음부터 일본말을 배울 생각은 아니었어요. 일제강점기라는 그늘 때문에 배운 일본말입니다. 이때 일본말을 배워야 하면서 제대로 배웠으니 늘그막에도 일본책을 읽습니다.

 저는 한국말을 하면서 살아가고, 한국말과 얽힌 삶자락을 들여다봅니다. 틀림없이 잘못 옮긴 대목이 있을 뿐더러 어설프거나 어줍잖은 대목이 많이 엿보이는 한국판 미우라 아야코 님 책입니다. 그러나, 번역하던 사람들 손길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일본사람 미우라 아야코 님은 어떤 일본말로 당신 넋을 이렇게 글조각에 담았을까 곱씹습니다. 차분히 읽다 보면 일본글 맛을 느낄 수 있고, 가만히 되새기면 한국말 번역에서 어설프거나 아쉬운 대목을 깨닫습니다. 그야말로 온힘 쏟아부은 아름다운 번역책을 알아볼 수 있고, 더없이 슬픈 몸짓으로 돈바라기에 이끌려 대충 엮은 책을 알아챕니다.

 생각해 보면, 미우라 아야코 님은 개신교도로서 소설을 쓰거나 산문을 썼다 할 만하지만, 믿음쟁이 한 사람이라는 삶결이라기보다는, 착하면서 참답고 아리땁게 당신 목숨을 사랑하고픈 수수한 동네 아줌마로서 글을 돌본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을 헌책방에서 한 권 두 권 찾아내어 사들인 다음 누런 소포봉투에 담아 옆지기네 어머님한테라든지, 내 둘레 고맙거나 좋은 분들한테 일반우편으로 때때로 부쳐 주곤 합니다. 얼굴을 마주하며 만나는 자리에서 넌지시 건넵니다. (4344.1.2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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