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과 헌책방> 10호에만 싣고 여기에는 걸치지 않은 글이라 슬그머니 올립니다... 



 한대수


 도서관에 있던 노래테이프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지 않았다. 도서관에 나들이를 왔던 누군가 슬그머니 훔쳤다. 1975년에 나온 한대수 노래테이프는 2010년까지 맑고 고운 소리결을 들려주면서 도서관을 찾아온 사람들한테 기쁨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노래테이프 하나는 아무한테도 기쁨을 선사해 주지 못한다. 이 노래테이프를 훔친 분은 집에서 홀로 조용히 한대수 옛 노래를 옛 가락과 옛 느낌을 곱씹으며 즐길 수 있을 테지. 그런데 당신 땀과 품으로 장만한 노래테이프가 아닌 다른 이가 아끼던 노래테이프를 훔칠 때에도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아무래도 훔치는 마음이기에 훔쳐서 홀로 즐길 때에도 아무런 창피나 부끄러움이 없을는지 모른다. 빌리겠다 한다고 안 빌려 줄까 싶으며, 빌려서 테이프를 복사한 다음 돌려주어도 될 텐데, 노래테이프 껍데기는 놔 두고 알맹이만 빼 갔다. 빈 껍데기만 남겨 놓았으니 그나마 고마운 노릇이라 할 수 있는데, 여덟 해쯤 앞서도 누군가 내 노래테이프 둘을 몰래 가져간 적이 있다. 그때에 그분은 우리 집에서 숱한 옛 노래테이프를 함께 듣다가 ‘김남주 육성 시 낭송 테이프’하고 ‘김민기 첫 앨범 테이프’를 알맹이만 쏙 빼 갔다. 나중에 빈 껍데기만 남은 모습을 보면서 ‘가져가려면 아예 다 들고 가 버리지 왜 껍데기만 남겼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맹이만 빼 간다고 모르겠는가. 나는 날마다 이 노래테이프를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다만, 몰래 빼돌렸으니 누가 빼돌렸는가를 알 길이 없다.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찾아와서 북적거리는 통에 슬쩍했으니까. 김남주 육성 시 낭송 테이프라든지 김민기 첫 앨범 테이프라든지, 이 테이프를 도둑맞은 지 여덟 해가 지났으나 두 번 다시 구경조차 못하고 있다. 아마 한대수 1975년 노래테이프 또한 앞으로 여덟 해가 아니라 여든 해가 지나도 다시 만날 길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 노래테이프에서 〈옥이의 슬픔〉이라는 노래를 가장 아끼며 좋아했는데, 이 노래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훔친 사람도 슬프고 빼앗긴 사람도 슬프다. (4343.5.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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