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글쓰기


 스스로 깊고 너른 목숨임을 느끼고 있을 때에는, 스스로 넓고 깊은 목숨임을 살며시 보여주고 나눌 글을 쓸 테지요. 스스로 숱한 지식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스스로 갖은 지식을 늘어놓으면서 둘레 사람들이 지식더미에 파묻히도록 내몰 글을 쓸 테고요. 나는 아직 깊거나 너른 글을 쓰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자질구레한 지식조각이 복닥이는 글만큼은 몸서리치도록 싫습니다. 내 삶과 내 넋과 내 글을 지식수렁에 빠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고운 사랑에 기쁘고, 따순 손길에 즐거우며, 넉넉한 품에 반가울 삶과 넋과 글로 흐르도록 가다듬고 싶습니다. 뭇사람이 밥과 같은 책이 아닌 돈과 같은 책에 휩쓸린다 한들, 제가 써낼 책이 돈을 닮게끔 내팽개칠 수 없을 뿐더러, 씨눈이 잘린 밥이라든지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에 절어 있는데다가 전기밥솥으로 달군 쓰레기밥을 좇을 수 없습니다. 고맙게 눈물 흘리고 살가이 웃음지을 밥 한 그릇으로 거듭날 글 한 줄을 좋아합니다. (4343.5.2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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