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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N vol.6 (雜誌)
荒木經惟 徐美姬 竹之內祐幸 岡部桃 Peter Hujar Santiago Mostyn / フォイル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한국판은 18000원짜리인데, 한국판은 목록에 없고 일본책만 목록에 뜨네...)
시골사람은 시골 사진을, 도시사람은 도시 사진을
[찾아 읽는 사진책 13] 사진잡지 《IANN 6호 : Freedom from the known on the line》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도시 사람들 삶터와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거나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거나 노래로 부르거나 춤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시골 사람들 보금자리와 삶무늬를 사진으로 찍거나 글로 적거나 그림으로 옮기거나 노래로 나누거나 춤으로 선보일 수 있습니다.
시골사람이래서 시골 모습만 즐겨야 하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이기에 도시에만 머물 까닭이 없습니다.
아파트로 숲을 이룬 곳에 산달지라도 달동네로 사진마실을 나올 수 있습니다. 달동네에 살더라도 아파트숲으로 찾아가 오늘날 도시 모습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옮길 만합니다.
골목동네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기에 ‘가난한 사람 모습’을 살가이 담지 않습니다. 아파트숲을 사진으로 그리기에 ‘잘사는 사람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지 않아요. 골목동네에도 잘사는 사람 많고, 아파트숲에서도 못사는 사람 많습니다. 골목동네에서 가난하게 살지만 아름다이 사는 사람 많고, 아파트숲에서 부자로 지내지만 슬픈 사람 많습니다.
어디에나 사람이고 삶입니다. 어디에서든 사랑이며 살내음입니다.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사람이 복닥이면서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나누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철거민을 찍거나 농사꾼을 찍었기에 더 훌륭하다 싶은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이름난 정치꾼을 찍었거나 손꼽히는 재벌 회장을 찍었다 해서 쓸모없는 사진이 되지 않아요. 내 중학교 적 교사나 내 유치원 적 선생님을 찍은 사진으로도 다큐사진 이야기를 이룹니다. 내 동무들 삶을 돌아보면서 패션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얼마든지 이룹니다. 사진기와 사진장치와 사진기법과 사진소재는 모두 덧없습니다. 사진을 하는 내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사진이 태어나거나 사진이 죽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한테도 어떠한 글감을 찾아 어떠한 틀로 적바림하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 삶 이야기를 글로 실어 내느냐가 대수롭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글로 펼치려 하느냐를 대수로이 여겨야 합니다.
백두산을 그리거나 한라산을 그렸기에 놀라운 그림이 아닙니다. 김영갑 님처럼 용눈이오름을 좋아해야 무언가 그럴듯한 그림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동네 뒷산도 좋고, 서울 남산도 좋습니다. 마을사람조차 이름을 잘 모르는 야트마한 멧중턱도 괜찮습니다. 어떠한 자리이든 좋은 멧자락이요 멧길이며 멧누리입니다.
골목길이나 고샅길이 더 호젓하지만은 않습니다. 시멘트길이든 아스팔트길이든 괜찮습니다. 나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는 가운데 껴안을 수 있는 길이어야 합니다. 내가 디디는 걸음걸이가 참다우며 착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다가서지 않고서야 이야기 하나 나누지 못합니다. 마음으로 마주할 때에 비로소 이야기를 살포시 나눕니다.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때에는 사진 십만 장이나 백만 장을 찍었더라도 작품이라 이름할 사진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다문 한두 장이나 열 몇 장만 찍었더라도 사진책 하나를 이룰 만합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한 꼭지를 맡는 사람은 으레 ‘필름 천 통’을 찍는다고 들었는데, 필름 천 통, 곧 삼만육천 장을 찍었어도 정작 잡지에 쓰는 사진은 스무 장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필름 천 통을 쓰면서까지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는 소리인 가운데, 이야기를 나누거나 즐기는 가운데 꼭 필름 한 통만 써서도 잡지를 너끈히 채울 만하다는 소리입니다.
- 산티아고 모스틴, 히로유키 타케노우치, 켈리 코넬, 김진희, 미키 조, 피터 후져, 배찬효, 김인숙, 모모 오카베, 노부요시 아라키
한 해에 두 차례 나오는 사진잡지 《IANN》 6호를 봅니다. 《IANN 6호 : Freedom from the known on the line》은 ‘성별 울타리’를 다룹니다. 남성과 여성, 또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 울타리가 어떠한가를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모두 열 사람이 열 갈래 삶자락에서 열 가지 눈빛으로 열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을 나눕니다.
한국사람 셋, 나라밖 사람 일곱 사진을 바라봅니다. 한국사람 사진은 금세 티가 나고, 나라밖 사람 사진도 얼른 알아챕니다. 나라밖 사람 사진 가운데 일본사람과 서양사람 사진도 쉬 가릴 수 있습니다.
저마다 삶터가 다르니 사진이 다릅니다. 놀거나 일하거나 어울리는 터전이 사뭇 다르니, 사진으로도 참 다른 모양새를 마주합니다.
《강운구 사진론》이라는 사진책을 읽으며, ‘얼마 안 된 지난날’ 나라밖에서 볼일을 마치고 나라밖 사진책을 사들고 들어오다가 공항에서 빼앗기는 대목(169쪽)을 보았습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며, ‘한국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벌써 예술이나 문화로 자리잡은 훌륭한 작가들 작품 하나 마음껏 들여오지 못하는 슬픈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한국은 예나 이제나, 또 얼마 앞서나 오늘날이나, 더욱이 요즈음이나 앞으로나 영 엉터리요 엉망입니다. 사회도 정치도 문화도 교육도 과학도 체육도 어느 하나 잘되거나 제대로 된 구석이 없습니다. 지난날에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마르크 리보, 다이안 아버스 사진책들을 공항에서 빼앗았다지만, 오늘날에도 한국에서는 이들 사진책을 펴내지 못합니다. 아니, 펴내지 않는다 해야 옳겠지요. 저작권 삯을 안 치르고 1999년 12월 31일까지 팔던 조그마한 사진문고로 그럭저럭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나라밖 사진쟁이와 출판사한테 제값을 치르며 내놓던 사진작품책이란 아직까지 없습니다. 잘 나가고 잘 팔린다는 나라밖 글쟁이한테는 몇 억씩 안기며 책을 사들이지만, 이름있을 뿐 아니라 훌륭하다는 나라밖 사진쟁이한테는 인세 5%이든 10%이든 아깝다 여길 뿐 아니라, 애써 내놓아도 제작비를 건질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리하여 한국은 엉망이고 엉터리입니다. 뜻있는 사진잡지사나 사진책 출판사는 돈이 적습니다. 뜻없는 출판사는 돈이 많습니다. 뜻은 있으나 가난한 사람이 많고, 뜻은 없는데 돈은 넘치는 사람이 많아요.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바라고, 돈이 있는 사람은 헤프게 씁니다.
생각해 보면,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즐겨야 합니다. 돈이 없으니 아무것도 못한다가 아니라, 돈이 없을 때에는 돈 없는 삶결대로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노래이든 춤이든 영화이든 즐기면 됩니다. 모든 영화가 돈이 많을 때에 훌륭히 찍을 수 있지 않아요. 모든 노래꾼이 돈 넉넉할 때에 목소리와 가락을 뽐내며 사랑받을 작품을 내놓지 않아요. 어떤 사진쟁이라 하더라도 매한가지입니다. 돈·이름·힘으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땀방울과 사랑과 믿음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브레송이나 아버스 사진책을 공항 들머리에서 북북 찢는 철딱서니없는 짓이 얼마 앞서까지 벌어지던 한국일 뿐 아니라, 브레송이나 아버스 사진책을 코앞에 들이밀어도 뭐가 어떻게 좋아 내 가슴이 울렁울렁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몹시 적은 한국입니다. 사진은 이름값이 아니라 작품이지만, 이름을 밝혀야 알아듣고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아예 쳐다보지 않아요.
사진잡지 《IANN 6호 : Freedom from the known on the line》을 들여다보면 한국땅 사진쟁이 사진은 무척 답답합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인데, 한국 삶터가 참으로 답답하게 꽉 막혔기 때문입니다. 이 막힌 곳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합니다. 싱그럽거나 맑은 숨을 홀가분하게 들이마시기 어렵습니다. 골방에 갇혀야 하고, 억지로 꾸며야 합니다. 연극을 하거나 몸을 사려야 합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골방에 갇혀야 하는 한국 글쟁이·그림쟁이·사진쟁이는 골방에 갇힌 삶결을 고스란히 옮기면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살림살이 그대로 예쁘며 아름다이 일구는 삶터를 예쁘며 아름다이 보여주면 됩니다. 슬프게 살아가니까 슬픈 삶을 적바림합니다. 기쁘게 살아가면 기쁜 삶을 적바림합니다.
자랑이나 우쭐거림이 아닌 문화이자 예술인 사진이고 그림이며 글입니다. 삶을 차곡차곡 실어내는 문화이며 예술인 사진이요 그림이요 글이에요.
나쁘다 할 대목이 없으며 좋다 할 구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삶을 놓고 더 나쁘다느니 더 좋다느니 할 수 없습니다. 삶은 그저 삶이고, 사진은 그예 사진입니다. 좋아하는 대로 살아내면서 나누는 이야기이기에 이야기꽃으로 피어납니다. 받아들이면서 즐기는 삶이라서 삶꽃으로 거듭납니다.
앞으로도 한국사람들은 더 도시로 몰려들고, 더 도시에서 복닥이며, 더 도시에서 맴돌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하는 사람들도 시골에서는 사진을 안 하겠구나 싶고, 도시에서 지내더라도 작은 도시에서는 사진을 못 하겠다고 느낍니다. 시골자락에서는 마땅한 책 하나 변변한 사진책 하나 찾아 읽기 어렵습니다. 인터넷을 뒤지면 무슨 책이든 못 사겠느냐만, 다리품을 팔아 내 손으로 뒤적이며 고르는 책읽기를 할 만한 책쉼터가 없는 시골이고 작은 도시예요. 사진은 골방에 갇혀서 똑딱똑딱 지어내지 못해요. 다리품을 팔아 내 손으로 책을 뒤적이며 고르듯, 내 다리를 움직이고 내 몸을 쓰며 내 마음을 기울이는 가운데 내 손으로 이루는 삶이요 사진입니다.
이 나라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시골에 살림집을 마련하여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사진을 찍는다면 어떠한 이야기열매를 맺을는지 궁금합니다. (4344.1.13.나무.ㅎㄲㅅㄱ)
― IANN 6호 : Freedom from the known on the line (이안북스 엮어 펴냄,2010.9.3./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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