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글쓰기 삶쓰기 ㉢ 삶짓기랑 삶쓰기
말사랑벗님들한테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이렇게 한 글자 두 글자 적바림하는 글은 글쓰기로 이루는 열매일 텐데, 저는 글쓰기란 삶쓰기라고 생각합니다. 내 삶을 쓰는 일이 곧 글쓰기라고 여겨요.
두 아이와 짝꿍 한 사람을 건사하는 아저씨가 하는 일은 글쓰기랑 사진찍기라고 했어요. 저는 글쓰기를 할 때에 내 삶을 쓰고, 사진찍기를 할 때에 내 삶을 찍습니다. 그래서, ‘글쓰기 = 삶쓰기’가 되고, ‘사진찍기 = 삶찍기’가 돼요. 말끝을 살며시 바꾸어 보면, ‘글읽기 = 삶읽기’가 되며, ‘사진읽기 = 삶읽기’가 됩니다. 사진은 담는다고 하니까, ‘사진담기 = 삶담기’가 되기도 해요. 글짓기를 헤아린다면 ‘글짓기 = 삶짓기’가 될 테지요.
삶은 억지로 지을 수 없어요. 그러나 삶은 아름다이 지을 수 있어요. 농사를 지을 때에 조금 더 많이 거두거나 일손을 덜 생각으로 풀약과 항생제를 칠 수 있습니다. 요즈막에는 농사짓기 아닌 농약짓기인 곳이 많아요. 이때에는 억지스러운 짓기가 되니 ‘옛날 글짓기’마냥 하나도 안 아름다운 모습이 되겠지요. 사람들이 뭍고기를 즐겨먹으면서 집짐승을 커다란 우리에 잔뜩 집어넣은 채 항생제랑 ‘짐승 주검에서 거둔 내장’을 섞은 사료를 주며 싼값으로 더 빨리 살을 찌우려 하다 보니 조류독감이니 구제역이니 하는 일이 생깁니다. 모두 억지스레 돈만 빨리 많이 자꾸 벌려 하면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입니다. 글 한 줄을 쓸 때에도 이 글 한 줄로 돈을 벌거나 이름을 드날리거나 동무들한테 사랑받으려 생각한다면, 몹시 부질없습니다. 글이 글다울 수 없어요. 글이 글다우려면 내 글에는 내 삶을 담으면서 내 동무랑 이웃하고 사랑스럽고 살갑게 어깨동무하는 매무새가 되어야 해요. 글재주로 억지로 지을 수 없는 글이고, 글솜씨를 어설피 뽐낼 수 없는 글이에요.
말사랑벗이랑 저랑 서로서로 아름다운 벗이나 이웃이나 살붙이라고 여긴다면, 제가 농사꾼이고 말사랑벗이 제 아이라 할 때에, 저는 우리 살붙이가 먹을 곡식을 일구면서 풀약이나 항생제를 쓸 수 없어요. 내 아이가 먹을 곡식뿐 아니라 내 이웃과 동무가 먹을 곡식에도 풀약이나 항생제는 못 씁니다. 어떻게 쓰겠어요. 참다운 농사짓기가 되도록 마음을 쏟아야지요. 다 함께 어여쁠 삶짓기를 하고 싶은 마음결로 농사짓기를 하고, 이러한 마음결 고스란히 글짓기를 하고픕니다. 이 글짓기를 이어 사랑짓기나 마음짓기나 생각짓기로 가지를 뻗고파요.
공을 잘 차서 영국이나 스페인이나 독일에까지 날아가 돈도 잘 벌고 이름도 크게 얻는 선수들 이야기는 참 멋있구나 싶습니다. 말사랑벗 가운데에는 공차기를 좋아해서 이런 이야기를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신나게 나누기도 할 텐데, 이런 이야기를 글로 담아도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 못지않게 아무개만큼 돈을 못 벌고 이름 하나 알려지지 않았으나, 바로 내 이야기를 조곤조곤 글로 담아 보아도 재미있어요. 동네에서 공차기 한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고, 동네에서 공차기를 하며 헉헉거리다가 0:10으로 졌다는 얘기를 쓰면 즐겁습니다. 내가 아는 내 삶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갈무리해서 글로 써 봅니다. 내가 아는 형이나 오빠나 동생 이야기를 갈무리하며 글로 담아 봅니다. 우리 어머니하고 아버지 이야기를, 우리 할머니하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갈무리하면서 글로 엮어 보아도 좋아요. 나를 비롯하여 내 둘레 살가운 사람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모두들 어떤 삶을 어떤 매무새와 꿈과 손길로 일구는가를 곰곰이 들여다보며 글로 담아 보셔요. 좋은 책이란 내 책이고, 내 책이란 내 삶이에요. 내 삶이 내 책이 되고, 내 책이 좋은 책이 돼요.
자전거를 타고 온누리를 한 바퀴 돌거나 아르헨티나 끝자락부터 캐나다 끝자락까지 달린다면 매우 멋지다 할 만하겠지요. 체 게바라라는 사람은 오토바이를 타고 중남미를 달렸다고 했어요. 말사랑벗 가운데에는 일찍부터 오토바이 타기를 좋아할 동무가 있을는지 모르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이웃나라 일본을 훗가이도부터 류큐 섬까지 달려 볼 수 있습니다. 인천 앞바다부터 간성 앞바다까지 바닷가를 따라 죽 달려 볼 수 있어요. 자전거를 타고 강화섬부터 구비구비 돌아 제주섬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자전거 유럽마실도 즐거울 테지만, 자전거 국내마실도 즐거워요. 시골길을 천천히 달리는 자전거마실도 즐겁고, 골목길을 느긋이 다니는 자전거마실도 즐겁답니다. 저는 충청북도 충주시 끝자락 멧골마을에서 살아가면서 서울로 책 사러 다닐 때에 자전거에 수레를 달아 끌고 다니곤 했어요. 요즈음처럼 짝꿍이랑 아이가 있던 때는 아니고, 혼자서 살 때 일이에요. 150킬로미터 길을 한 주에 한 차례씩 한 해 동안 자전거를 타고 오가면서 책을 사서 읽었답니다. 이렇게 다니는 동안 길에서 쉬엄쉬엄 다리를 풀어 줄 때에 수첩에 느낌을 몇 글자씩 끄적였고, 이렇게 끄적인 이야기를 그러모아 《자전거와 함께 살기》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어요. 남다르거나 대단한 이야기는 하나도 아니랍니다. 그저, 주마다 늘 오가는 자전거길에서 날마다 다르게 느낀 이야기를 그때그때 적바림하면서 저절로 책 하나가 태어났어요.
말사랑벗이라면, 날마다 학교를 오가면서 날마다 마주하는 사람과 날씨와 길 들을 이야기 하나로 조금씩 꾸리면서, 이 이야기가 한 해치이든 두 해치이든 세 해치나 네 해치이든 모일 때에 시나브로 책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마땅한 노릇인데, 이때에 억지로 꾸며서 쓰는 글이라면 책이 되지 않아요. 수수하거나 투박한 내 삶을 그대로 글 하나로 담을 때에 책이 된답니다.
내가 좋다고 느끼면 내 삶은 좋은 삶이에요. 내가 나쁘다고 여기면 내 삶은 나쁜 삶이에요. 내가 즐겁다고 느끼면 내 삶은 즐거운 삶이고, 내가 슬프다고 느끼면 내 삶은 슬픈 삶이에요. 가난하다고 나쁜 삶이 아니고, 엄마 아빠한테 돈이 많다고 좋은 삶이 아니에요. 걸어서 학교를 다닌다고 슬픈 삶일 수 없고, 자가용으로 느긋하게 학교를 오갈 수 있어 기쁜 삶이 되지 않아요. 시험을 치러 1등이건 10등이건 꼴등이건 나 스스로 내 학교살이를 좋아하면 넉넉합니다. 키가 크건 작건, 몸매가 이러하건 저러하건, 나는 내 마음과 꿈을 아름다이 보듬으면 사랑스럽습니다. 착한 마음을 살가이 담은 편지가 애틋합니다. 글씨만 또박또박 예쁘장하게 썼대서 살갑게 주고받을 편지가 되지 않아요. 똑똑하다지만 마음이 차갑다면 사이좋은 동무가 되기 어려워요. 좀 어리숙해도 마음이 따스하다면 어깨동무하는 동무가 돼요. 글이란 내 사랑을 착하고 따숩게 담는 즐거운 삶 한 자락입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