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날 아직 인천에서 살던 때에 써 놓은 글입니다. 

삶은 아름다운 사랑인가 쓰레기더미인가
― 백민, 《문답으로 풀어 본 문학 이야기》
 


- 책이름 : 문답으로 풀어 본 문학 이야기
- 글 : 백민
- 펴낸곳 : 현장문학사(1990.2.25.)



.. 이 시에 보면 우리 노동자의 일반적인 심리가 잘 지적되어 있습니다. 어두운 조명등 아래서 찢어지는 팝송을 들으면서 미싱을 박는 우린, 사람들이 무식하고 답답하다고 강요하는 의식 속에서 살지요. 그런데 그것은 바로 노예의식이고 ‘못 배운 게 죄’라는 자본가의 생각입니다 ..  (19쪽)


 옆지기가 가지고 왔던 고양이 노리개는, 고양이 열 마리를 모두 길로 내보낸 뒤에는 옥상에서 비를 맞으며 썩어 갔습니다. 집에 들여놓을 수 없어 바깥에 둔 노리개였는데, 이제는 버려야 할 판이 되었습니다. 가게에서 100리터짜리 큰 쓰레기봉투를 둘 사 와서 꾸역꾸역 담습니다. 비가 오락가락 하다 보니, 쓰레기차가 지나갈 때 내놓아야 하는데, 선뜻 내놓지 못합니다. 오늘도 빗줄기가 조금씩 듣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질구레한 쓰레기 몇 가지를 큰 봉지에 눌러 담으면서, 우리 집에서 언제 쓰레기를 내놓았는가 헤아려 봅니다. 글쎄, 거의 없었지 싶은데. 우리 집에서 쓰레기가 안 나와서 내놓지 않았는가? 그런가? 그러고 보면, 웬만한 물건은 다시쓰기를 하려고 버리지 않았으며, 쓰레기가 될 만한 물건을 사들이는 일이 없으니, 내다 버릴 물건이 거의 없습니다.

 그때그때 먹을 만큼만 날푸성귀를 사다가 먹는데, 집에서 뒹구는 비닐봉지와 장바구니를 꼬박꼬박 챙기고 있기에 새 비닐봉지가 더 생기지 않습니다. 과자부스러기 군것질을 안 한다면, 전자제품 바꾸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도시에서 살면서도 쓰레기 나올 일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우리 식구는 손빨래를 하고 텔레비전이나 냉장고조차 안 쓰니, 이런 데에서도 살림은 단출하다고 할 만하겠지요.


.. 이런 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우린 우리 자신의 실생활을 성찰하고 변혁시킬 글을 쓰지 못하는 겁니다. 글쓰는 일뿐만 아니라 교과서에서 심어 준 ‘문학은 부드럽고 편안하고 초역사적이다’라는 고정관념은 우리가 해야 할 실천의지를 망각하게 합니다. 또한 교과서에 ‘문학비평 글’이 실리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청소년 시절에 건전하게 비평, 비판하는 훈련을 못 배웠기에 참고서에 씌어진 대로 암기만 하는 꿀벙어리로 자라났죠 ..  (37쪽)


 다만, 우리 집 살림에서 책이 거의 모두를 차지합니다. 한 번 보고 버리는 물건이 아닌 책인 터라, 한두 번씩 읽은 뒤에도 고스란히 모입니다. 부피는 크지 않다지만, 열 권이 넘고 백 권이 넘고 천 권이 넘다가 만 권도 넘어가면, 장난이 아닌 부피가 되어 버립니다.

 마음에 새기는 책이기 때문에, 한 번 마음에 새기고 나서는 다른 이한테 물려주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내가 읽은 책을 틈틈이 헌책방에 내놓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집살림 크기를 줄이고, 좋은 책을 이웃과 두루 나눈다는 뜻으로.

 우리 식구는 동네 도서관을 차렸습니다. 책을 버릴 수 없는 일을 하며 삽니다. 이러다 보니, 여느 살림 쓰레기는 거의 없지만, 앞으로 집을 옮겨야 할 일이 있다면 아주 끔찍하게 되겠다고 느낍니다. 집을 옮길 걱정이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한테 돈이 적고 많고를 떠나서, 지자체나 중앙정부에서 ‘재개발 계획’을 세우면, 우리 살림터는 고스란히 내어주고 떠나야 합니다.


.. 삶이라는 샘물에서 시의 생수를 끌어내기 때문에, 우린 감동하는 겁니다. 이런 시는 구체적인 체험 없이는 쓰지 못하는 거죠 ..  (123쪽)


 책상맡에 앉아 이 책 저 책 들추어 보다가 한동안 책을 덮습니다. 등을 책꽂이 한쪽 벽에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봅니다. 오늘 우리 집에 있는 이 책들은 나한테 무슨 뜻이 있을는지 헤아립니다. 이 책들을 읽은 나는 무엇을 읽고 배웠는지 곱씹습니다. 책 하나와 내 삶 한 자락을 어떻게 다독이는가 생각합니다.

 이 책들은 우리한테 얼마나 참다운 삶을 가르쳐 주거나 내보이는가를 돌아봅니다. 이 책들은 엮은이가 얼마나 땀을 흘려서 엮었을는지 곱씹습니다. 글쓴이나 그림그린이나 사진찍은이 삶이 얼마나 속깊이 스며들었을까 가누어 봅니다. 무엇을 바라면서 펴낸 책인지 톺아보고, 누구한테 읽히고자 묶은 책인지 가누며, 어떤 누리를 꿈꾸면서 내놓은 책인지 곰곰이 짚어 봅니다. (2008.6.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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