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바늘꽃 카르페디엠 15
질 페이턴 월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능금나무는 전쟁을 모릅니다
 [책읽기 삶읽기 32] 질 페이턴 월시, 《분홍바늘꽃》


 20세기 첫무렵 유럽에서는 커다란 싸움판이 두 차례 벌어졌습니다. 흔히들 ‘세계대전’이라 하지만, 가만히 따지면 ‘유럽 싸움’입니다. 유럽사람들이 저희 나라나 겨레를 한껏 살찌우려는 마음으로 이웃 나라나 겨레로 총칼을 들고 밀어붙이면서 벌어진 싸움판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판을 벌인 나라나 겨레를 들여다볼 때에, 싸움을 일으킨 나라에서 밑바닥 자리에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농사꾼이라든지 노동자들은 어떤 삶이었을까 궁금합니다. 밑바닥 자리에 있는 사람들 또한 이웃 나라나 겨레로 총칼을 들고 쳐들어가서 죽이고 죽으며 돈과 보배를 빼앗는 가운데 내 밥그릇을 채우는 일을 기쁘게 맞아들였으려나요.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바보처럼 따르거나 얼간이처럼 못난 짓을 하고 말았으려나요.

 유럽에서 펼쳐진 두 번째 큰 싸움판을 무대로 쓴 청소년소설 《분홍바늘꽃》을 읽습니다. 이 청소년소설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싸움을 일으킨 독일 권력자는 크나크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싸움을 일으킨 독일 권력자 뒤에는 세계 경제와 무기시장을 주름잡던 거대재벌이 있었고, 이 거대재벌은 미국에 있는 록펠러와 모건이었다고 합니다. 총칼과 같은 무기란 거대재벌이 돈을 벌어들이는 ‘공장 상품’이고, 더 큰 탱크와 더 빠른 비행기와 더 무서운 항공모함은 더 어마어마하게 큰 돈을 벌어들이는 ‘공장 인기상품’입니다.

 으레 독일하고 이탈리아만 못된 짓을 저질렀다고들 역사책에 적힙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영국이든 프랑스이든 네덜란드이든 에스파냐이든 …… 아프리카며 아시아며 중남미며 닥치는 대로 쳐들어가서 식민지를 삼았습니다. 이들 ‘힘있고 돈있으며 이름있는’ 유럽 나라들은 제 나라와 겨레 밥그릇을 더 크게 불리려고 총칼을 앞세우며 싸움박질을 했습니다. 어쩌면, 유럽에서 벌어진 큰 싸움이란 권력자끼리 맞붙은 ‘식민지 넓히기 싸움’이라 해야 알맞을는지 모릅니다. 이 나라 밑바닥 사람이든 저 나라 밑바닥 사람이든 그저 고달파야 하고 싸움터에 병사로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던 슬픈 굴레인지 모릅니다.


.. 나는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어른들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보다 뉴스에 더 많이 귀를 기울였다. 나는 비행기를 보는 것이 좋았다 ..  (17쪽)


 학교에서 가르치는 한국사나 세계사는 거의 모두 ‘싸움박질을 해서 땅넓이를 얼마나 넓혔고, 정치권력자는 언제 어떻게 물갈이가 되었는가’ 하는 데에 머무릅니다. 지난날 사회와 문화를 다루는 대목 또한 ‘한 나라나 겨레를 이루는 수수한 사람들 삶’이 아닌 ‘권력자가 누리던 삶’을 다룰 뿐입니다.

 우리네 전통문화를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궁중음식과 궁중옷을 전통문화로 다룹니다. 궁중에서 임금님과 신하들이 누리던 노래를 전통음악으로 여깁니다. 따지고 보면, 역사책을 쓰는 사람은 나라에서 돈과 지위를 받아 나라일을 적바림하는 사람이지, 여느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여느 사람들 삶과 발자취를 살피거나 적바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인데, 대학교수가 되어 역사를 파고들면서 역사를 쓰지, 골목동네나 시골 농삿집 사이에서 함께 밑바닥 삶을 꾸리는 가운데 역사를 파헤치거나 파고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재 너머 사래 긴 밭 언제 갈려 하느냐” 하고 노래하는 시는 있어도, 몸소 밭갈이 논갈이 씨뿌리기 김매기 가을걷이를 하는 가운데 ‘지식인 스스로 생활인이 되어 땀흘리는 삶을 노래하는 시’는 한 꼭지조차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흐름은 그리 바뀌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살림하고 아이 키우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는 나날을 노래하는 대중가요나 문학이나 영화는 얼마나 될는지요. 비정규직이든 대형마트 점원이든 중·고등학교 수험생 자리에서든 내 삶을 노래하는 대중가요나 문학이나 영화는 있기나 한지요.


.. 갑자기 짜릿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흐르며 몸이 떨렸다. 자유였다. 아무도 나를 돌봐 주지 않을 것이다. 나를 걱정해 주거나, 뭔가를 시키거나, 제때에 먹으라고 하거나, 이를 잡으려 하거나, 다친다고 막아 주지도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모두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모두들 전쟁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  (44쪽)


 청소년문학 《분홍바늘꽃》은 영국 런던이라는 도시에서 힘겨이 살아남은 아이들이 주인공입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싸움을 일으켜 놓고는 아이들이 걱정스럽다며 ‘도시에서 내보내 시골로 옮기는’ 일을 합니다. 그렇다고 시골에 살붙이나 피붙이가 있지 않은 아이들도 많을 뿐더러, 시골로 옮기기만 한다고 아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습니다. 어른들부터 그저 도시에서만 살고파 하면서 아이들만 달랑 시골로 보내서 무엇이 나아지겠습니까. 어른들 스스로 도시에서 득시글거리는 삶을 그치며 시골에서 손수 땅을 일구어 조용히 꾸리는 삶이라 한다면, 아이들 또한 즐거이 시골로 갈 만합니다. 어른들은 도시에서 돈을 벌거나 싸움터로 나아가 이웃 나라 사람들을 죽이는 수렁에서 허덕이는데, 아이들이 시골로 가고파 할까 모르겠습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영국이든 독일이든 프랑스이든 이탈리아이든 …… 이들 나라 사람들이 더 큰 도시를 키우지 않고, 스스로 수수하게 농사지으며 제 살림을 조그맣게 꾸리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싸움이 일어났을까 하고.

 싸움판 이야기는 떠올리기 싫어 책상맡 시집을 하나 꺼냅니다. 갑갑할 때마다 늘 펼치는 신동엽 님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입니다. 책장을 죽 넘겨 〈산문시 1〉를 읽습니다. “스킨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대통령이 청와대 같은 데에서 갖가지 서류에 둘러싸인 채 일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짐자전거에 막걸리병을 싣고는 슬슬 골목길을 달리고 고샅길을 달리며 시인 아저씨네에 놀러간다면, 온누리 어디에서고 싸움이 터질 까닭이 없습니다. 너 죽고 나 살자는 끔찍한 싸움이란 벌어지지 않습니다. 총칼을 든 싸움이든 돈뭉치로 벌이는 싸움이든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제대국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고, 국민소득이 이만 달러이든 이십만 달러이든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국민소득이 이백 달러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가는 길이 있어요. 국민소득이 아예 0원이랄지라도 서로서로 예쁘게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 길이 구멍투성이라서 버스가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사람들은 건물 더미 사이로 좁은 길을 힙겹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가게 진열장들에는 유리창 대신 널빤지가 대어진 채 ‘정상 영업’이라는 글씨가 페인트로 조잡하게 쓰여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붉은 버스 차장 아주머니가 우리한테 몸을 기울이고 창밖을 보더니 말했다. “맙소사. 똑같이 갚아 줘야 돼!” 줄리가 나에게 물었다. “우리 편도 저렇게 (이웃나라를 폭탄으로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짓을) 할까?” 나는 몸소리를 치며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어.” ..  (66∼67쪽)


 유럽에서 크나큰 싸움이 벌어지던 때, 모든 나라가 무기를 들지는 않았습니다. 몇몇 나라는 그냥 흰 깃발을 들었다고 합니다. 괜한 싸움으로 제 나라 여느 사람들이 다치거나 여느 사람들 살림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흰 깃발을 펄럭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밑자락에서는 조용히 싸우는 사람이 있었다지만, 평화를 지키거나 사랑하는 길은 총칼에 있지 않음을 몸소 보여줍니다.

 한국땅에서 더 나은 교육을 꿈꾸거나 바라는 사람들이 미국으로든 독일으로든 프랑스로든 영국으로든 많이들 배우러 떠납니다. 사진을 하든 그림을 하든 문학을 하든 다들 이렇게 나라밖, 아니 유럽에서 이름난 나라들로 떠나곤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름난 나라들보다 이름이 적게 나거나 덜 나거나 안 난 나라로 가곤 합니다. 이를테면 스웨덴이나 덴마크나 핀란드로 배우러들 갑니다. 이러면서 ‘핀란드 교육혁명’이라든지 ‘스웨덴 교육혁명’을 읊습니다. 이들 핀란드이든 스웨덴이든 덴마크이든 교육을 혁명하지 않았는데, 우리 사회하고는 아주 크게 다르니까 마치 혁명이라도 되는 듯 여깁니다.

 이들 나라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무기 아닌 논밭연장을 만듭니다. 지식이 아닌 사랑을 가르치고, 정보가 아닌 믿음을 일깨웁니다.

 저마다 사이좋게 어우러지며 살아갈 사람임을 몸소 드러낼 뿐이니, 혁명이라는 이름은 걸맞지 않습니다. 누구나 오순도순 얼크러지며 기쁘게 웃을 사람임을 스스로 보여줄 뿐이기에, 대단한 교육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을 치를 까닭이 없습니다. 학교는 말 그대로 배움터여야 합니다. 학교에서 교사 일을 맡은 이는 아이들이 참답고 착하며 고운 사람으로 크도록 돕는 한편, 교사 스스로 참답고 착하며 고운 어른으로 당신 넋을 지키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전쟁 반대”나 “평화 사랑”이라는 목소리를 낼 우리들이 아닙니다. 내 삶을 사랑하며 아끼는 길을 조용히 씩씩하게 걸어가야 할 우리들입니다. 내 고향마을을 아끼고, 내 보금자리인 살림집을 사랑할 우리들입니다. 성경책에는 내 한쪽 뺨을 때렸으면 내 다른 쪽 뺨도 때리라 이야기합니다. 우리 옛말에는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했습니다. 삶은 사랑이고, 사랑은 삶입니다. 전쟁은 미움이고 미움은 전쟁인데, 전쟁이든 미움이든 삶하고는 너무 동떨어집니다.


.. 우리 집 양쪽 옆집과 건너편 집 두 채가 무너졌는데, 창문 유리가 길 끝까지 날아갔다. 우리 집이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구멍만 남았다. 하지만 사과나무는 거의 뿌리까지 둘로 가라지기는 했어도 이듬해 봄에 새싹이 돋아났고 그 뒤로 꿋꿋이 살아남았다 …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아무리 히틀러의 폭격기가 하늘을 가득 메워도 나뭇잎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해 보였다. 물론 당연히 그래야 하고, 또 그렇게 되었지만 말이다 ..  (63, 76쪽)


 능금나무는 싸움이든 전쟁이든 모릅니다. 분홍바늘꽃 같은 조그마한 들꽃 또한 싸움이든 전쟁이든 모릅니다. 호박꽃이 싸움을 알까요. 오얏나무가 전쟁을 알려나요.

 전쟁무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상추 한 잎보다 잘날 구석이 없습니다. 총칼을 움켜쥐며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사람을 죽이거나 괴롭히는 권력자는 시금치 한 포기보다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나와 동무를 사랑할 길을 찾을 사람입니다. 내 터와 이웃마을을 고루 아끼는 길을 찾을 사람입니다. 《분홍바늘꽃》에 나오는 아이들은 바보스럽고 우악스러운 어른들 굴레에 빠져들지 않습니다. 처음 제 어버이한테서 목숨을 선물받던 때 느낌 그대로, 사랑과 믿음으로 이 땅에서 튼튼하고 당차게 살아내고픈 꿈을 건사합니다.

 어른들은 힘이 좀 여리면 좋겠습니다. 어른들은 돈이 좀 적으면 좋겠습니다. 어른들은 이름이 좀 없으면 좋겠습니다. 수수하고 투박하면서 고즈넉한 삶을 얼싸안는 참사람으로 아이들과 웃고 떠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3.12.23.나무.ㅎㄲㅅㄱ)


― 분홍바늘꽃 (질 페이턴 월시 글,햇살과나무꾼 옮김,양철북 펴냄,2007.1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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