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손수건의 모험 - 꽃담사 아이손그림책 01
야마기시 사이코 지음, 황정순 옮김 / 꽃담사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그림책 맞아들이는 즐거움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 야마기시 사이코, 《하얀 손수건의 모험》(꽃담사,2009)


 새벽 네 시에 아이가 뒤척이면서 “아빠, 쉬.” 하고 나즈막하게 말합니다. 아이 아빠는 이 소리를 잠결에 얼핏 듣고는 곧바로 일어납니다. 눈이 잘 안 뜨였으나 억지로 뜨고는 “쉬 할래? 그래, 쉬 하자.” 하면서 아이를 일으킵니다.

 눈이 따갑고 방이 어둡지만 아이 있는 쪽을 가만히 더듬으며 안아서 일으키니 “젖었어. 기저귀 젖었어.” 합니다. 밤새 쉬를 한 번 누었군요. 아이가 쉬를 누고서 아빠한테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나 못 들었을 수 있고, 아이는 쉬를 했어도 하도 고단했기에 못 느낀 채 그예 잤을 수 있습니다.

 아이를 걸려 큰방에 있는 아이 변기에 앉힙니다. 기저귀를 풉니다. 아이는 쉬를 조금만 합니다. 아이를 안아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눕힙니다. 새 기저귀를 채웁니다. 아빠는 밖으로 나가 텃밭 가장자리에 쉬를 합니다. 방으로 들어오니 아이가 “아빠, 손.” 하고 말합니다. 어서 누워 손 한쪽 달란 얘기입니다.

 아이가 까무룩 잠들면 기지개를 켜고 하루 일을 열까 생각했으나, 아이가 잠들지 않기에, 자칫 새벽 네 시부터 깨어날까 걱정스러워 나란히 눕기로 합니다. 아이는 한 시간 남짓 잠을 안 자고 뒤척이면서 손을 이리 잡고 저리 잡으면서 가끔 종알종알합니다.

 잠이 들었다가 깼다가를 되풀이하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나랑 아이랑 거꾸로라 할 때에, 나는 내 아버지한테 밤에 자다가 쉬를 누고프다며 말을 꺼낼 수 있을까 떠올려 봅니다. 아빠를 큰소리로든 작은소리로든 부를 때에 내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줄는가 헤아려 봅니다. 짜증스러워 하거나 귀찮아 하지 않으면서 스스럼없이 변기로 데려다줄는지 생각해 봅니다. 누워서 손을 달라고 말할 때에 기꺼이 내주면서 아이랑 똑같이 잠을 뒤척일 수 있는지 가누어 봅니다.

 나 스스로 아이 눈높이가 될 때에는 아이가 웃는 삶을 반가이 맞아들입니다. 나부터 아이랑 눈을 맞출 때에는 아이가 칭얼거리는 까닭을 금세 읽습니다. 아버지 된 사람으로서 내 일만 살피거나 내 몫만 따진다면 아이가 웃든 울든 아랑곳하지 않을 뿐더러 쉬 손찌검을 한다고 이맛살을 찌푸리겠지요. 아비 된 주제에 내 그릇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아이가 칭얼거릴 때에 밥이 되든 놀이가 되든 알뜰히 챙기지 못하면서 더 고단하거나 힘겨운 나날을 되풀이하겠지요.

 요즈음, 아이는 퍽 자주 칭얼거렸습니다. 착하며 사랑스러운 아이 모습보다 골 부리며 소리지르는 미운 아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는 아버지는 더욱 힘겹고 지쳤습니다. 그런데 그예 내 자리에서만, 그러니까 어른 자리에서만, 게다가 아버지 눈높이에서만 볼 때에는 힘겹고 지칠밖에 없습니다. 아이랑 눈을 맞출 뿐 아니라 마음과 삶을 가만히 맞춘다면 힘겹거나 지칠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부터 아이 앞에서 착하며 사랑스러운 어버이다울 때에, 아이 또한 스스럼없이 시나브로 착하며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니까요.


.. 높은 하늘은 파랗게 아주 아주 맑았고, 해님은 반짝 반짝 따스하게 보두를 감싸 주고 있었어요. 정말 평화롭고 포근한 오후였어요.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얀 손수건은 왠지 따분해서 재미가 없었어요. ‘아아, 매일 매일 너무 심심해! 어디 재미있는 일은 없을까?’ 하얀 손수건은 골똘히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여기를 떠나 신나게 모험을 하는 거야!’ 하얀 손수건은 빨래집게에게 부탁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빨래집게 님! 빨래집게 님! 저를 자유롭게 놔 주세요. 정말 정말 신나는 모험을 하고 싶어요.” ..  (4∼7쪽)


 그림책 《하얀 손수건의 모험》을 펼칩니다. 두 번쯤 찬찬히 읽고는 이 그림책이 얼마나 사랑받는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켭니다. 뜻밖에 이 책은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습니다. 이 책을 내놓은 출판사는 2008년부터 2010년 올해까지 꼭 두 권만 내놓았는데, 두 권 모두 판이 끊어졌습니다. 혼자서 책을 만들어 내는 출판사인 듯한데, 출판사가 문을 닫았으려나요. 두 해도 세 해도 목숨을 잇지 못한 채 그만 한 해 만에 책방에서 사라지는 그림책이라니.

 그림책 《하얀 손수건의 모험》에 나오는 하얀 손수건은 갖은 모험을 겪거나 치르면서 한결 씩씩하고 꿋꿋하게 살아갑니다. 외톨이가 되거나 버려지거나 뒹굴면서 기운을 잃을 만하지만, 이때마다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한결 튼튼하며 빛나는 넋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그림책을 내놓아 준 출판사 일꾼 또한 하얀 손수건마냥,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닥친다 할지라도 당차게 맞서거나 슬기롭게 헤쳐 나가면서 하루하루 한결 싱그러우면서 시원스러운 책삶을 일군다면 좋을 텐데요.

 생각해 보면, 하얀 손수건은 ‘너무 심심하’기 때문에 모험을 찾으러 길을 떠나지는 않습니다. 하얀 손수건이 대롱대롱 걸리며 보송보송 마르는 포근한 집 포근한 빨래줄에 그대로 있어도 즐겁겠지요. 하얀 손수건을 사랑하는 집임자 앞주머니나 뒷주머니에 꽂힌 채 온누리를 함께 마실하는 기쁨을 나눌 만하겠지요.

 그러나 하얀 손수건은 ‘내 길을 내 힘으로 걸어 보고 싶다’는 꿈을 품습니다. 이 길이 거칠든 메마르든 힘들든 괴롭든, 한번 스스로 맞서 보고 싶다고, 부딪혀 보고프다는 꿈을 키웁니다. ‘자유롭게’ ‘신나는’ 삶을 꿈꿉니다.


.. “물고기 님! 물고기 님! 헤엄을 잘 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나도 물고기가 되고 싶어요.” “하하하! 그랬구나. 잘 봐. 이렇게 지느러미랑 꼬리를 흔들면서 헤엄치는 거야. 자, 이제 연못 속으로 들어오렴.” 이렇게 해서 하얀 손수건은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하얀 손수건은 물 속에서 즐겁게 헤엄을 쳤습니다. “정말 멋있는데! 진짜 마음에 들어! 비둘기보다 몇 백 배 더 좋아!” ..  (14쪽)


 자유(自由)로움이란, 우리 말로 하자면 홀가분함입니다. 누구한테도 얽히지 않을 뿐더러 매이지 않는 삶입니다. 누구한테도 얽히지 않으니, 누군가 나를 돕지 않으며 나 또한 누군가한테 도움을 바라지 않습니다. 나를 지킨다거나 나한테 비빌 언덕이 될 사람이 따로 없는 삶입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 하고,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용을 써야 합니다. 바야흐로 밑바닥부터 새로 열어젖힐 삶입니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무엇이든 손수 해야 합니다. 밑천이 없으니 어느 일이든 몸소 해내야 합니다. 밥도 없지만 밥그릇도 없고 수저며 밥상이며 하나도 없습니다. 쌀도 없고 찬거리도 없습니다. 어딘가 일자리를 얻어 빨리 일을 해서 돈을 벌지 않는다면, 나무열매라든지 풀잎이라든지 푸성귀라든지 갈무리해서 배를 채우지 않는다면 굶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기에 아무것한테도 매이지 않으나, 그 어느 것도 나를 보살피거나 돌보지 않아요. 하나같이 고달프거나 괴로울 수 있으며, 한결같이 신나거나 새로울 수 있습니다.

 하얀 손수건은 맨 처음, 새한테서 ‘나는 법’을 배웁니다. 다음으로 물고기한테서 ‘헤엄치는 법’을 익힙니다. 이윽고 꽃한테서 ‘서는 법’을 물려받습니다.

 날고 헤엄치며 서기.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이 세 가지를 어릴 때부터 제 어버이한테서 하나하나 이어받아요. 어버이가 하나씩 찬찬히 가르쳐 주기도 하고, 어버이가 살아가는 매무새를 아이들이 바라보며 받아들이곤 합니다. 따스한 말씨를 아이들 또한 따숩게 맞아들이고, 거친 말투를 아이들은 언제나 거칠게 아로새깁니다.

 착하며 곱게 살아가는 어버이와 함께 있는데, 어느 아이가 착하지 않을 수 있으며 곱지 않을 수 있나요. 너그러우며 포근히 살아가는 어버이가 곁에 있는데, 어느 아이가 너그러움이나 포근함하고 동떨어질 수 있겠어요.

 아이들은 교과서로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원이나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요. 아이들은 집에서 배웁니다. 아이들은 마을에서 배워요.


.. 하얀 손수건은 따스한 햇살을 가득 받으면서 아름다움을 뽐냈어요.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칭찬도 많이 들었습니다. “와아! 너, 정말 예쁘구나!” 하얀 손수건은 정말 행복했어요. “모두가 나를 보고 예쁘다고 하니까 진짜 기분이 좋은데!”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튤립들이 점점 말라 가기 시작했습니다. “튤립 님! 튤립 님!” 아무리 불러도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았어요. 하얀 손수건은 또 다시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  (20∼21쪽)


 그림책 《하얀 손수건》을 세 번째 읽으려 할 무렵, 스물여덟 달째 함께 살아가는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어, 어, 책이네.” 하면서 아빠 무릎에 궁디를 척 디밀며 콩 하고 앉습니다. 같이 보잡니다.

 아빠는 이 그림책을 읽은 다음 느낌글을 끄적거리려 했으나, 아이가 그림책 읽어 달라 하는 바람에 글쓰기는 미루고 맙니다. 아이한테는 아직 그림책 줄거리대로 다 들려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림책에 나오는 모습들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름을 말하고, 그림책에 나오는 줄거리는 한두 줄로 간추려서 이야기합니다. 옆지기가 ‘아이가 말을 배우고 싶어 한다’고 했던 말을 되씹으면서, 아이가 한 번에 알아듣고 따라할 만한 길이로 줄거리를 간추립니다.

 이오덕 님이 쓴 어린이문학 비평에서 ‘어린이문학은 글을 짧게 써야 한다’고 했던 대목이 떠오릅니다. 그렇다고 마구 짧게만 써서는 안 되고 ‘이야기(할 말)를 살포시 담으며 알맞도록 짧게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잘 엮은 그림책은 이런 말마따나 아이들이 한달음에 외워서 따라할 만한 길이로 글을 담곤 합니다. 지나치게 길다든지, 아이들한테 너무 어려운 말을 함부로 넣지 않아요. 얄궂다는 말투라든지, 안 좋다는 일제식민지 말씨라든지, 섣부른 한자말이나 영어 말마디에 앞서, 아이 삶을 곱게 헤아리며 따숩게 보듬는 말결로 알뜰살뜰 일구어야 하는 그림책이고 어린이책입니다.


.. 하얀 손수건은 또 다시 슬퍼졌습니다. “지금 나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는 낡은 헝겊 조각이구나. 정말 못났어.” 하얀 손수건은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하얀 손수건으로 돌아가고 싶어. 아주 작고 그렇게 멋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하얀 손수건이었을 때가 제일 행복했어.’ ..  (24∼27쪽)


 《하얀 그림책》을 다섯 번 넘게 아이랑 읽습니다. 이제 그만 읽자 하며 내려놓으니 다른 그림책을 읽자며 다리를 굴립니다. 히유, 그러자, 아빠 일은 네가 깊이 잠든 다음에 해야겠네, 그럼 뭐를 읽을까, 그래, 《꼬마 인형》(가브리엘 벵상 글·그림)을 읽자.

 아버지 무릎에 앉아 그림책을 읽는 아이 눈이 말똥말똥합니다. 눈빛이 예쁘게 살아숨쉽니다. 아버지는 제 일을 제때에 해낼 겨를이 없지만, 아이 눈을 보고 눈빛을 느낍니다. 그래요, 일이야 어른들끼리 복닥이는 삶자락이니까, 전화 한 통 걸어 “저기요, 아이하고 그림책 읽느라 하루만 미루어도 될까요?” 하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정 안 되면 그만두고 다른 일감을 찾을 수 있어요. 그러나, 스물여덟 달을 살아가는 아이하고 그림책을 함께 읽는 때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오늘을 놓치면 이듬날은 없고, 이듬날을 붙잡지 않으면 글피 또한 찾아오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반가이 맞아들일 삶이고, 언제나 곱게 어루만질 삶입니다. 한결같이 어여쁜 삶이며, 어제 오늘 글피 모두 사랑스러운 삶입니다. 이제 아이는 새 하루를 연다며 종알종알 조잘조잘 노래를 부르며 깨어납니다. 참말 아이는 아침마다 노래를 부르며 깨어납니다. 엊그제 삶아 놓은 고구마 하나를 아이한테 쥐어 줍니다. 쌀을 씻어 불립니다. 미역을 손으로 끊어 불립니다. 슬슬 밥에 불을 넣어야겠습니다. 아침을 먹고 오늘은 오늘 몫만큼 아이하고 제대로 부대끼며 웃고 떠들어야겠습니다. (4343.12.7.불.ㅎㄲㅅㄱ)


― 하얀 손수건의 모험 (야마기시 사이코 글·그림,황정순 옮김,꽃담사 펴냄,2009.5.14./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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