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와 글쓰기


 편지를 읽는다. 손으로 한 글자 두 글자 적바림한 편지를 읽는다. 내가 요즈음 너무 고단하다 못해 지친 나머지 집식구한테 자꾸 골을 부린다고 새삼 돌아본다. 아이 하나를 돌보며 이토록 고단하다면 아이 둘일 때에는 어쩌지? 깊은 밤 손글씨 편지를 읽다가 문득, 내 일거리로 수첩에 뭔가 끄적이느라 손글씨로 글을 쓰기는 하지만, 정작 내 살붙이나 동무한테 손글씨로 편지를 얼마나 썼는가 헤아리다 보니, 한 달에 두어 번 쓰기는 하지만 찬찬히 글을 적어 띄우지는 못하는구나 싶다. 나는 손으로 글을 적을 때에 첫머리에는 좀 또박또박 반듯하게 쓰지만, 이내 삐뚤빼뚤 날림 글씨가 되고 만다. 나 스스로 내 생각을 차분하게 추스르지 못하는 탓이다. 할 말이 넘친다든지, 해야 할 말을 가만히 모두지 못하는 탓이다. 천천히 숨을 돌리면서 한 글자를 적고 두 글자를 쓰지 못하는 탓이다.

 셈틀을 켜고 글을 쓰면 훨씬 빨리 한결 수월하게 글을 쓸 수 있다. 셈틀 자판으로 글을 쓰면 제아무리 빨리 두들기거나 마구 두들긴다 할지라도 화면에 박히는 글씨는 반듯반듯하다. 일그러지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몹시 차분해 보이는 글인 셈틀 글씨이다. 셈틀 글씨로 글을 읽을 때에도 얼마든지 이 글을 쓴 사람 마음을 읽을 만하다. 종이에 찍힌 책을 펼칠 때에도 얼마든지 이 책에 글을 쓴 사람 넋을 읽지 않는가.

 바쁘다고 글을 더 바삐 쓸 수 없다. 느긋하다고 글을 더 느긋하게 쓰지 않는다. 바삐 쓰는 글이라 해서 어줍잖은 글이 되지 않으며, 느긋이 쓰는 글일 때에 한껏 멋스럽거나 알차다 말할 수 있지는 않다.

 히유, 내가 쓰고픈 글은 우리 살붙이들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기쁘며 즐거운 삶이 아닌가. 셈틀로 글을 쓰든 손으로 글을 쓰든 언제나 속으로 말을 하면서 글을 쓰는데, 음, 목소리랑 숨소리랑 손길이랑 마음길을 한결같이 잘 생각해야겠다. 곰곰이 떠올리며 편지를 써야겠다. (4343.1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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