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을 하며 읽는 책


 예전에 혼자 살던 때에는 마실을 다니며 길에서든 차에서든 거의 쉬지 않고 책을 읽었다. 마실을 다니는 곳마다 마주하는 책방에 들러 또다른 책을 잔뜩 장만하면서 새로운 책을 끊임없이 읽었다. 옆지기를 만나 함께 살아가면서도 함께 마실을 하는 길에 틈틈이 책을 읽었고, 마실 다니는 곳에서 함께 찾아가는 책방에서는 책을 곱배기로 장만했다. 이제 아이 하나를 낳아 함께 살아가면서는, 함께 마실을 할 때에 책을 읽지 못한다. 그래도 가방에는 책을 한두 권이나 두세 권 챙겨 놓는다. 아주 살짝이라도 틈을 내어 한 줄이라도 읽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참말, 아이랑 함께 마실을 다니면서 길에서든 차에서든 잠집에서든 책을 펼치지 못한다. 길에서는 아이랑 복닥이느라, 차에서는 아이를 안느라, 잠집에서는 아이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래하느라, 또 지치고 고단해서 곯아떨어지느라 책을 손에 쥘 수조차 없다. 2010년 11월 13일부터 11월 17일까지 제주마실을 하면서 《식민지의 사계》(조지 오웰 글,청람 펴냄,1980) 한 권을 챙겼다. 요사이 조지 오웰 님 책들이 새롭게 눈길과 사랑을 받으며 다시 나오는데, 그동안 조지 오웰 님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수없이 새로 나오는 동안 제대로 사랑받은 적은 거의 없지 않느냐 싶다. 아무튼, 이 책 하나 가방에 챙겨 늘 갖고 다녔지만, 새벽에 똥을 누며 몇 쪽 넘기고 끝. 비행기에서든 버스에서든 어디에서든 도무지 펼치지 못한다. 그래, 말이 좋아 여행하며 책을 읽는다는데, 혼자 한갓지게 여행할 때가 아니라면 책이란 한낱 꿈이다. 아니, 복닥이고 보듬으며 안아야 하는 아이랑 옆지기가 바로 책이라 할 만하겠지. 아이랑 옆지기랑 마실을 하며 종이책을 읽겠다고 생각한 애 아빠는 바보요 멍텅구리이다. (4343.11.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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