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0.11.4.
 : 빈 수레 끌고 언덕 오르기



- 아이를 태우고 마을을 한 바퀴 돌려고 했는데, 아이가 그만 오늘은 일찍 낮잠을 잔다. 여느 때에는 잘 안 자더니, 그동안 안 자던 낮잠이 한꺼번에 몰려 왔나. 낮잠을 자 주어 고맙다고 느끼는 한편, 늘 안 자려던 낮잠에 푹 빠져드는 아이가 걱정스럽다.

- 아이를 태우려던 수레를 떼어 놓고 마을 가게를 들를까 하다가 수레를 그대로 붙이고 달리기로 한다. 수레 무게만 하여도 제법 나가기 때문에 수레를 안 달고 달리면 한결 가볍다. 그렇지만 수레를 달고 달려 버릇해야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 내 다리가 차츰 익숙해질 테지. 더군다나, 아이를 낳기 앞서부터 아이를 낳은 뒤로 자전거를 얼마나 못 타며 지냈는가. 집식구 돌보랴 아이 안고 다니랴 하면서 늘 걸어다니기만 했지, 자전거는 좀처럼 탈 겨를을 못 냈다. 그러니까, 오늘처럼 아이가 낮잠을 자며 수레에 태울 수 없다 하더라도 빈 수레를 끌면서 돌아다녀야 한다.

- 오르막을 오른다. 마을 오르막이지만 꽤 가파르다. 높이는 낮지만, 처음부터 길이던 길이 아니라 가파르다. 새로 뚫는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는 아예 곧으며 높낮이가 없도록 닦는다. 이웃마을 멧등성이를 가로지르는 새 고속도로 닦는 모습을 가끔 올려다보는데, 우람하며 높직한 시멘트 기둥이 몹시 무섭다. 예전에는 길을 낼 때에 멧자락을 구비구비 돌도록 닦았는데, 이제는 굴을 내고 다리를 놓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할 때인가. 오르막이나 잘 올라가야지.

- 오르막을 다 오르고 삼백 살 가까이 나이를 먹은 느티나무 옆을 지난다. 며칠 앞서 이 길을 아이를 태우며 지날 때하고 그리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이 몸무게는 십오 킬로그램 즈음 된다. 수레 무게만 해도 이십 킬로그램이 넘는다. 이십 몇 킬로그램을 끄나 사십 킬로그램쯤을 끄나 매한가지일까.

- 마을 가게에 들러 달걀을 사고 김치를 얻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배 짐차를 두 번 만나다. 처음 만난 택배 짐차 아저씨가 나를 보고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이때에 난 오르막을 오르고 있었기에 ‘어, 어.’ 하면서 가쁜 숨을 몰아쉴 뿐 인사를 못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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