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는 까닭


 배워야 하니 책을 삽니다. 더 배워야 하니까 더 책을 삽니다. 거듭 배워야 하기에 거듭 책을 삽니다. 꾸준히 배워야 하는 만큼 꾸준히 책을 삽니다. 내 길을 갈고닦아야 하는 터라 내 길을 갈고닦을 책을 삽니다. 내 삶을 사랑하는 그대로 내 삶을 사랑할 책을 삽니다. 나 스스로 읽어 나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갈 기운을 얻도록 돕는 책을 삽니다. 오늘 하루 읽고 어제 하루 읽었으며 글피 하루 읽을 책을 삽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혀 읽어 주고 함께 읽는 책을 삽니다. 책꽂이에 곱게 채워 놓을 책은 사지 않습니다. 꽤 많이 팔리는 책이라 해서 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입에 침이 닳도록 추켜세우는 책이라 할지라도 딱히 사지 않습니다. 내 가슴으로 스며들 때에 책을 삽니다. 내 마음이 활짝 문을 열도록 다가오는 책을 삽니다. 나부터 두고두고 사랑할 만한 책을 삽니다. 우리 아이가 튼튼하고 씩씩하게 큰 다음에도 아낌없이 사랑해 줄 수 있을 만한 책일까 헤아리며 책을 삽니다. 돈이 넉넉하기에 책을 사지 않습니다. 돈이 모자라기에 책을 못 사지 않습니다. 돈을 좀 벌었다고 아무 책이나 사지 않습니다. 살림돈이 바닥났어도 책을 삽니다. 집에 책꽂이가 모자라지만 책을 삽니다. 책꽂이 살 돈을 겨우 마련했으나 책꽂이 살 돈으로 다시 책을 삽니다. 이 바람에 애써 산 책을 책꽂이에 알뜰히 건사하지 못하고 바닥에 쌓아 놓고 말지만, 다시금 상자 가득 가방 가득 책을 삽니다. 잠자리맡에 둘 책을 삽니다. 책상맡에 놓는 책을 삽니다. 아이가 날마다 수없이 들여다보며 되읽는 책을 삽니다. 100만 원이 들든 10만 원이 들든 1만 원이 들든, 어쩌면 한 해 꼬박 치르는 책값이 1000만 원 가까이 되거나 웃돌든 어찌 되든 책을 삽니다. 내가 책을 사지 않았다면 책값으로 들인 돈을 어디에 썼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내가 책을 사지 않고 살았으면 책값으로 들였던 돈을 벌 수 있었는지, 또는 오늘까지 이렇게 목숨을 이으며 내 깜냥껏 즐거웠다고 돌아보는 나날을 보낼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리하여 저는 책을 사고, 또 사고, 다시 사며, 거듭 사다가는, 자꾸자꾸 사고, 되풀이해서 사며, 겹쳐서 사기도 하면서, 신나게 삽니다. (4343.10.3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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