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41 : 책사랑 삶사랑
아이는 읽은 책을 또 읽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보고, 이듬날이건 다음날이건 줄기차게 읽습니다. 이 책 하나가 틀림없이 좋기 때문이겠지요. 다른 수많은 책이 없어도 이 책 하나로 넉넉하기 때문이겠지요. 먼길을 나서며 책 하나 챙겨야 한달 때에 아이는 어느 책을 챙길는지를 잘 알겠다고 느낍니다.
애 아빠는 읽은 책을 또 읽기도 하지만, 으레 새로운 책을 읽으려 듭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다 여길 만한 책은 무엇인가요?” 하고 물으면 “이제까지 읽은 좋은 책들이 참 많지만, 바로 오늘 제 손에 쥐어들어 읽는 책이 가장 좋아요.” 하고 대꾸합니다. 저로서는 제 책삶이 이러하니까 이런 말을 하고야 맙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며 느껴야 합니다. 애 아빠는 책을 만들거나 쓰는 일을 하는 가운데, 책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일을 합니다. 언제나 ‘새로 나오는 책’ 흐름을 알아야 하고, ‘예전에 나왔으나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책’ 자취를 헤아려야 합니다. 이러한 일 매무새가 내 삶 매무새로 자리잡습니다.
아이로서는 읽은 책을 또 읽는다기보다 좋아하는 책을 즐겨읽습니다. 사랑할 만한 책을 사랑해요. 가슴에 꼬옥 안으며 아낄 만한 책을 참말 가슴에 꼬옥 안으며 아껴 읽습니다.
그러니까, 손꼽히는 책이라 한다면, 나라 안팎에서 널리 사랑받는다는 책이라 한다면, 아주 마땅한 소리인데 ‘새로 나오는 책’이 손꼽힐 책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이 알려지’거나 ‘홍보가 잘 되어 잘 팔리는 책’이 손꼽을 책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손꼽는 좋은 책·고운 책·빛나는 책·어여쁜 책·훌륭한 책·멋진 책이란 곧 두고두고 되읽는 책입니다. 이 책 하나로 내 삶을 밝게 일군다 싶을 때에 저절로 손가락을 꼽으며 싱긋 웃습니다.
애 아빠는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애 아빠는 집식구 오순도순 살아갈 돈을 마련하고 밥을 하며 빨래랑 갖가지 뒤치다꺼리를 해야 합니다. 숨돌릴 겨를은 있으나 멈출 수 없는 쳇바퀴를 돌립니다. 언제나 새로운 마음과 몸으로 새 하루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이는 무엇을 하며 새 하루를 맞이하고, 새 날을 어떤 마음과 몸으로 즐길까요. 애 아빠 눈썰미가 아닌 아이 눈높이로 바라보는 집살림이란, 마을살이란, 보금자리란, 멧기슭 터전이란, 하루란,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아이는 그림책 《로타와 자전거》랑 《까만 크레파스》를 보고 보며 또 봅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아이가 보고 보며 또 본 그림책을 읽히다 보면, 이 그림책은 질리지 않습니다. 지루하지 않습니다. 볼 때마다 지난번에는 놓치거나 느끼지 못한 즐거움을 찾습니다. 만화영화 〈이웃집 토토로〉를 보든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나 〈천국의 아이들〉이나 〈라 스트라다〉를 보든 매한가지입니다. 볼 때마다 새삼스러우며 지난번에 못 본 이야기와 모습을 느낍니다. 저한테는 날마다 먹는 밥하고 같은 책들이요 영화들입니다. 날마다 먹으며 날마다 남다른 맛인 밥처럼 날마다 마음껏 즐기며 신나게 얼싸안을 수 있는 책일 때에 책상맡에 놓고 꾸준히 사랑할 만합니다. (4343.10.22.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