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0.10.20.
 : 잠자리밭 달리기


- 금왕읍(무극읍)에 먹을거리를 사러 가다. 가방에는 쓰레기 한 봉지를 담는다. 시골집 둘레로는 쓰레기를 거두러 오는 차가 없다. 도시라면 요일에 맞추어 쓰레기차가 오갈 뿐 아니라, 사람이 꽤 많이 사는 데에서는 날마다 쓰레기봉투를 거두러 다닌다. 그렇지만 시골마을에는 한 달에 한 번조차 쓰레기차가 다녀 가지 않는다. 시골집에서는 쓰레기를 그냥 태우거나 땅에 묻어야 한다. 우리 집이야 비닐농사를 짓지 않으니 농사비닐이 나올 까닭이 없지만, 농사짓는 이웃집들은 비닐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 비닐을 읍이든 면이든 거두지 않기 때문에 고스란히 땅에 묻거나 태운다. ‘국산 곡식’을 사들인다는 농협이라고 비닐 쓰레기를 거둘까? 시골사람은 시골사람대로 농약 담은 병이랑 막걸리 담은 플라스틱이랑 땅에 심어 놓던 비닐을 고스란히 쓰레기로 내놓으니 모조리 땅으로 흘러들고야 만다. 정갈한 자연 터전이란 건사하기 어렵다. 우리 집에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작은 쓰레기는 작은 봉지에 담아 읍내에 나갈 때에 버스역 쓰레기통이나 농협 하나로마트 쓰레기통에 넣는다.

- 집을 벗어나 논둑길을 달린다. 볕 잘 드는 논둑길에는 잠자리가 아주 많이 앉아 있다. 내 자전거가 지나갈 때에 수십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차근차근 날갯짓을 한다. 입을 벌리고 달리다가는 잠자리가 입에 들어갈 수 있다. 얼굴이고 안경이고 몸이고 잠자리가 부딪는다. 자전거 빠르기를 늦춘다. 자전거가 너무 빨리 달리면 잠자리가 다칠 테니까.

- 자동차 씽씽 달리는 큰길로 나오니 잠자리는 거의 안 보인다. 다만, 드문드문 몇몇 잠자리가 보이는데 이 잠자리들은 머잖아 자동차한테 밟혀 죽거나 치여 죽겠지. 자전거로 달리는 길 가장자리에는 밟혀 죽거나 치여 죽은 잠자리 주검이 잔뜩 있다. 이제 나비는 거의 안 보인다. 나비들은 벌써 숨을 거두고 말았을까.

- 충주시 신니면에서 음성군 생극면과 금왕읍으로 갈리는 세 갈래에서 금왕읍 길로 접어들어 오르막을 달린다. 조금 달리니 새 길을 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왜 새 길을 내야 할까 궁금하다. 예전 길이 뭐 말썽이 있다고. 예전 길은 그대로 둔 채 새로 닦는 고속도로하고 잇는 길 하나만 내면 되는데. 이 길을 새로 닦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일부러 산자락을 제법 파헤쳐서 안쪽으로 길을 냈고, 예전 길이 있던 자리에는 중앙분리대를 널찍하게 만들었다. 참 돈 쓸 데가 많은 대한민국이다.

- 읍내에 닿다. 마침 오늘은 무극 장날. 여느 날에는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하나로마트가 썰렁하다. 그나마 시골에서는 장날 때에만 하나로마트가 썰렁하다. 시골 작은 가게들은 온통 하나로마트한테 잡아먹혔다. 도시에서는 이마트이니 롯데마트이니 홈플러스이니 하지만, 시골에서는 작은 면에까지 하나씩 있는 하나로마트가 마을사람 살림을 무너뜨린다. 나는 이 하나로마트를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삼으며 즐겨찾는다.

- 장마당이 펼쳐진 곳에서는 자전거를 끌며 걷다. 늘 들르는 묵집에서 묵 하나 사고 옆집에서 찐빵을 사려는데 벌써 다 팔리고 없단다. 한쪽 다리를 저는 아주머니가 길바닥에 펼쳐 놓은 능금 한 봉지를 사다. 포장마차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랑 순대를 2500원어치씩 사다. 음성읍 떡볶이집보다 값이 좀 세고 부피 또한 좀 적다.

- 아이 엄마가 사 오라 했던 닭튀김을 사다. 더 살 거리는 없기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따뜻한 먹을거리가 식기 앞서 집에 닿으려고 신나게 오르막을 달린다. 읍내로 올 때에는 빈 가방에 내리막이기에 땀방울이 안 돋으나,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오르막이요 꽉 찬 가방이니 땀방울이 송글송글 돋는다.

- 공사하는 자리를 지나 대원휴게소 못 미친 굽은길 내리막을 달린다. 관광버스 한 대가 갑자기 자전거 쪽으로 달라붙는다. 굽은길 내리막을 달릴 때에 자전거 쪽으로 버스를 밀어붙이니 자전거는 옴쭉달싹 못할 뿐 아니라 도랑에 처박혀야 한다. 서둘러 브레이크를 잡는다. 가까스로 부딪히지 않고, 도랑에 처박히지도 않다. 2차선 길이 아닌 4차선 길이며 오가는 차가 드물어 관광버스는 안쪽 길로 달리면 된다. 그런데 굳이 자전거 옆으로 바짝 붙다가는 밀어붙인다. 버스기사는 차를 몰며 심심하기에 시골에서 자전거 달리는 사람을 노리개로 삼는가. 자칫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판이나, 죽이든 다치게 하든 얼른 내빼면 누가 일을 저질렀는지 알 턱이 없으니 완전범죄가 된다고 여겨 이런 짓인가. 이런 못된 짓거리 때문에 누가 치었는지 모르며 숨을 거두는 마을 할배가 얼마나 많았을까. 이런 못난 기사들 때문에 어린 나이에 숨을 거두는 마을 아이가 얼마나 많았으랴. 불쌍하다. 안쓰럽다. 가엾다. 안타깝다.

- 마을길로 접어들다. 다시 논둑길을 달린다. 집을 나서며 나를 배웅하던 잠자리떼가 나를 맞이해 준다. 잠자리들은 날갯짓 바지런히 하며 내 둘레를 오락가락한다. 내가 아주 천천히 달리면 내 머리에든 몸에든 살포시 내려앉겠지. 집에서 빨래를 마당에 널 때면 잠자리들이 빨래에든 내 손에든 내 옷에든 가만히 내려앉곤 한다. 이 잠자리들은 곧 추위가 닥치면 모두 숨을 거두겠구나. 잠자리한테는 마지막 햇살을 쪼이는 나날이요, 바라보고 마주하며 만나는 모든 목숨과 풀과 하늘과 흙과 물이 하나같이 애틋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잠자리라 하여도 논둑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 옷이나 머리나 손이나 자전거 손잡이에 얌전히 내려앉고 싶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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