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과 글쓰기


 으레 새벽 네 시 무렵에 잠에서 깨어 글을 쓴다. 이무렵에 글을 쓸 때를 빼놓고는 거의 글을 쓸 겨를을 내지 못한다. 스물여섯 달을 함께 살고 있는 아이랑 지내면서 이렇다면, 내가 아이 둘이나 셋을 건사하는 어버이였다면 어떠할까. 이때에는 내 글쓰기에 품과 땀과 힘을 얼마나 쏟을 수 있을까. 아니, 글 좀 깨작댄다며 깝죽이나 떨 수 있으려나.

 스물여섯 달을 함께 살아가는 아이가 아주 갓난쟁이였을 무렵을 떠올린다. 그무렵에도 없는 틈을 쪼개어 글을 썼다. 아이를 품에 안으며 책을 읽고, 아이를 가슴에 안으며 몇 시간 동안 팔을 덜덜 떨며 골목마실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아득한 지난날이랄지, 꿈같은 옛날이랄지 모르겠다.

 살면서 생각한다. 못할 일은 없고 안 될 일 또한 없다. 안 하는 일이 있을 뿐이고 생각을 않는 일만 있을 뿐이다. 날마다 새벽 일찍 일어나 글을 쓰다가 살짝 눈을 붙일라치면 아이가 깨어난다. 살짝 눈을 붙이지조차 못하며 아침과 낮과 저녁을 보낸다. 아이가 낮잠이라도 자 준다면 나 또한 함께 낮잠을 한 시간쯤 잘 텐데, 아이는 밤 아홉 시나 열 시까지 버티며 놀자고 칭얼거리기 일쑤이다. 애 아빠로서 제대로 놀아 준다면 아이도 금세 지쳐 낮잠을 까무룩 잘 텐데, 새벽부터 일어나 글쓰기를 하니까 제대로 쉬지 못하는 고단한 몸으로 제대로 놀아 주지 못한다.

 하품이 쏟아지고 등허리가 결린다. 손마디가 저리며 온몸이 찌뿌둥하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버틴다기보다 이대로 꾸리는 삶이 좋으니까 이대로 산다고 해야 할까. 아이가 부디 아홉 시까지만이라도 잠들어 있기를 빌며 아이 옆에 살짝 누워야겠다. 하품을 할 때마다 눈물이 쏟아진다. (4343.10.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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